
정영무 논설위원
‘반값 등록금’이 응집력을 더해가고 있다. 어제 촛불집회에는 시민단체, 정당에 그치지 않고 졸업한 선배들까지 가세했다. 취업은 어렵고 사회에 나오자마자 등록금 빚쟁이가 돼 청춘을 저당잡혔다는 얘기는 학생들의 미래다.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을 겪는 학생과 부모들이 낙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두 딸이 대학 다닐 때 정말 허리가 휘는 줄 알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반값 등록금은 그 자체로 중요한 현안이지만, 무상급식에 이어 복지의 판도라 상자를 활짝 열어젖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복지 찬성론뿐 아니라 다양한 공격과 반론이 제기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온갖 목소리 가운데 현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논리가 약한 소리들은 이번 기회에 걸러내면 된다. 변화의 흐름이 진행될 때 세 부류의 반동적 수사가 역사의 발목을 잡곤 했다는 앨버트 허시먼의 통찰을 빌려보자.
허시먼은 18세기 시민적 시민권, 19세기 정치적 시민권, 20세기 사회적 시민권의 정립기에 가공할 힘을 지닌 역추진력의 이데올로기가 이어졌으며 그로 인해 진보적 프로그램들이 좌절을 겪고 희생과 불행이 따랐다고 한다. 보수는 역사의 고비마다 역효과론·무용론·위험론을 돌려 내세워 변화를 무력화시키려 했다. 곧 정치·사회·경제질서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며,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커서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논리다. 지금 쏟아지는 ‘복지 포퓰리즘’ 주장은 대부분 허시먼의 세 분류에 들어맞는다.
등록금 지원으로 대졸자가 더 늘어나면 고학력 재앙이 온다는 역효과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이며 감세 철회의 효과가 감세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는 무용론, 반값 등록금을 꺼낸 현 정권은 지난 정부보다 더 좌파이며 왼편으로 쏠리면 안정성장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위험론. 심지어 소련이 붕괴한 주요 원인이 과도한 복지지출이며 복지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다간 소련처럼 붕괴할 수 있다는 역효과 더하기 위험론도 등장했다.
허시먼은 이러한 공격이야말로 진전을 가로막는 근거없는 포퓰리즘이라며 해체되고 무력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재정건전성과 복지의 우선순위, 부작용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복지의 ㅂ자만 꺼내도 손사래를 치고 거부반응을 보이는 장면은 뛰어넘어야 한다. 레이건 시절 미국 사회에 보낸 허시먼의 경고는 유효하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는 지난 재보선 뒤 감세 철회, 반값 등록금을 의제로 올려 모처럼 민심의 지지를 받았다. 표를 위한 선심용 카드니 철학 없는 임기응변이니 하는 비판도 따랐다. 엊그제까지 보편적 복지와 무상급식에 대해 망국적이라고 외쳤기에 그럴 만도 하다. 배경과 진의가 어떻든 한나라당이 정책 선회를 한 것은 의미가 크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정부가 더 많은 복지로 양극화 해소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등록금 문제도 선진국들처럼 고등교육을 학습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고 풀 일이다.
복지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도 아니면 모 식의 이념적인 접근은 옳지 않다.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독일의 복지제도는 물론이고 영국의 복지제도도 처칠의 보수당에 의해 발전했다. 복지국가는 진보와 보수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것이며, 양쪽이 동기나 취지는 달라도 모두 복지에 내세울 지분이 있다. 국방과 복지는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같기 때문이다.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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