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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사리

등록 2011-06-08 19:19

지난 주말에 외식을 했다. 우리 식구가 찾아간 곳은 김치찌개로 유명한 집. 뭘 먹을까 주저할 일이 없었다. 자리 잡자마자 김치찌개를 주문하니 아내가 혼잣소리처럼 한마디 한다. “또 값이 올랐네….”

김치찌개 1인분에 6500원. 살림하며 느끼는 체감물가는 엊그제 물가당국의 발표로 확인되었다. 김치찌개 값은 1년 전보다 7.3%가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갑절 가까이 오른 셈이다. 새로 붙인 가격표가 밉살스러워서일까, 무심히 보았던 차림표가 왠지 낯설게 다가왔다. 물가 상승 탓? 아니, ‘허리케인 박’ 때문이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그녀. 없는 돈에도 이것저것 주문했건만, 그녀는 먹지 않고 딴 곳만 바라본다. 그녀 시선 머무는 곳은 뮤직박스, 그 안의 ‘허리케인 박’이다. 디제이 디오시(DJ. DOC)가 노래한 안타까운 삼각관계는 ‘신당동 떡볶이 집’에서 얽힌다. ‘라면사리’와 ‘쫄면사리’는 물론이고 ‘만두사리’에 ‘계란사리’까지 있는 ‘신당동 떡볶이 집’. ‘허리케인 박’이 앞가르마 넘기는 집에 있는 엉뚱한 메뉴가 김치찌개 집 차림표에도 있었다 ─ ‘고기사리 4000원’.

그러고 보니 부대찌개 집에는 ‘베이컨사리’, 철판볶음밥 집에는 ‘치즈사리’, 닭갈비 집에는 ‘고구마사리’에 ‘닭사리’도 있었다.

사리는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 또는 ‘그 뭉치를 세는 단위’(<표준국어대사전>)이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냉면 하나 추가”하면 냉면 ‘한 그릇’을, “냉면 사리 추가”하면 ‘똬리 튼 냉면 한 뭉치’를 내온다.

하지만 떡볶이 집의 “만두사리”, 김치찌개 집의 “고기사리”는 ‘(만두나 고기) 추가’의 뜻으로 통한다.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삶은 국숫발’을 뜻하는 사리가 어쩌다 사리(事理)에 어긋하게 되었을까. ‘사리’가 ‘추가’의 뜻이 된 건 원뜻 살피지 않는 말글살이 탓이다. ‘계란사리’ ‘고기사리’처럼 음식점 차림표에 제 뜻에 어울리지 않게 적힌 ‘사리’는 ‘추가’로 바로잡을 일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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