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권 논설위원
파이의 분배를 외면하는
소수의 배타심이 판치고
다수는 동질감을 잃어가고
소수의 배타심이 판치고
다수는 동질감을 잃어가고
얼마 전 택시를 타고 한강 강북강변도로를 달리며 20분가량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라기보단 택시기사가 주로 하소연을 하고, 나는 조심스레 맞장구를 치는 식이었다. 그는 옆 차로의 한 회사택시를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얘기를 간추리면 이렇다.
“손님, 왜 저 택시가 한낮에도 유리창을 열어놓고 운행하는지 아세요? 엘피지 값 때문이오. 이달 1일부터 엘피지 가격이 50원 이상 올라 (1ℓ당) 1140원을 넘었소. 손님에게 미안하지만 에어컨을 오래 켜면 남는 게 없어요. 가스회사들은 수익이 엄청나다는데, 기사들은 죽을 지경이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 세금을 더 깎아줄 궁리나 하고.
손님을 자주 모시고 가다 보니 알게 된 유명 호텔 벨보이가 있어요. 정규직이라 월급에 보너스까지 사는 게 괜찮았죠. 그런데 호텔이 꼼수를 부려 업무를 외부 회사로 넘겼고, 꼼짝없이 비정규직 신세가 됐어요. 소득이 확 줄고, 신분도 불안하죠. 돈 잘 버는 호텔이 너무한 것 아니오?
아무리 택시가 돈벌이가 안된다지만 예전엔 일 끝나고 기사들이 단골식당에서 종종 삼겹살에 소주 한잔씩은 했죠. 하지만 요즘엔 한달에 한번도 힘들어요. 자연히 식당도 어려워지고. 돈이 도대체 돌지를 않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하나는 제대로 할 거라 했는데, 있는 사람 편만 들어요. 어떤 손님은 ‘엠비 정치가 이대로 지속돼야 한다. 그래야 유럽같이 폭동이 일어나고 확 뒤집힐 수 있다’는 말까지 해요. 그랬다간 나라가 망한다고 대꾸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요. 국민을 바보로 아나. 내년 선거 두고 보시오. 다들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
올해 마흔살이라는 택시기사의 이름을 슬쩍 훔쳐봤다. 그는 뒷좌석 손님의 ‘정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격정적으로 말을 쏟아냈다. 택시기사만큼 생생하고 다양한 세상살이를 접하는 사람이 없다지만, 그의 얘기가 모두 옳지는 않을 터다. 하지만 민심이 이 정부를 완전히 떠났구나 하는 느낌은 분명하게 다가왔다. 그 민심이반의 핵심이 상위 1% 혹은 10%의 입맛에 맞는 정책에서 비롯된 불평등이라는 사실과 함께.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넘쳐난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노동자의 소득 비중을 나타내는 노동소득 분배율은 2007년 61.1%에서 2010년 59.2%로 하락했다. 지난해 기업의 영업잉여는 361조원으로 전년(310조원)보다 16% 증가한 반면, 피용자 보수는 527조원으로 전년(493조원)보다 6.9% 증가하는 데 그쳤다. 노동자보다 기업의 주머니가 더 불룩해진 것이다. 올해 5월 기준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831만명에 이르고,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4만명이나 된다. 올해 4년제 사립대 평균 등록금인 768만원을 벌려면 편의점 알바 대학생은 1800시간 가까이 일해야 한다. (하루 8시간으로 치면 7개월이 넘는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인간의 이기심을 꼬집는 말이겠지만, 시야를 공동체로 넓히면 사회적 통합력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이처럼 잘 보여주는 말도 없다.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호소해 놓고 정작 파이는 한쪽이 독차지한다면, 그 불평등이 주는 상실감과 분노는 배고픔보다 훨씬 강하게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한다. 지금 우리 눈앞에선 파이의 분배를 외면하는 소수의 배타심과 독식주의가 판을 치고, 그로 인해 다수가 동질감을 상실하는 살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배고프고 배 아픈 수많은 이들이 단단히 심판을 벼르는 이유다.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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