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미국 진보당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확립한 계기가 됐다
미국 정치에서 최대의 진보정당 실험은 1948년 대선에서 ‘진보당’이었다. 진보세력들은 민주당을 나와 진보당을 창당하고, 헨리 월리스 전 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세웠다. 진보당은 흑인의 완전한 투표권 등 인종차별 정책의 종식,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 등 획기적인 진보 정책을 내걸었다. 결과는 참혹한 패배였다. 총득표율 2.5%에, 선거인단 표는 한 표도 못 얻었다. 당시 반소·반공주의 분위기에서 공산주의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 선거에서 해리 트루먼 민주당 후보의 낙선은 기정사실이었다. 남부 보수세력도 민주당을 탈당해 ‘주권민주당’(딕시크랫)을 창당하고, 인종차별주의자인 스트롬 서먼드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민주당 정권을 20년간 지탱한 뉴딜동맹의 두 축인 진보세력과 남부 보수세력이 모두 빠진 것이다. 하지만 트루먼은 오른쪽에서 발목을 잡던 남부 보수세력이 나가자 민생정책은 진보당에 버금가게 진보적으로 내세웠고, 왼쪽에서 발목을 잡던 진보세력이 나가자 대외정책은 반공·반소정책을 확실히 했다. 오히려, 광범위한 중도세력을 확실히 잡게 됐다. 선거 다음날, 트루먼은 ‘듀이(공화당 후보), 트루먼을 꺾다’라는 제목을 단 <시카고 트리뷴>의 1면 오보기사를 들고 승리를 자축했다.
진보당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확립한 계기가 됐다. 공화당도 선거 패배에 충격을 받아, 다음 대선 후보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부터 민생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좌회전했다. 미국 진보세력은 정치세력화에 실패했으나, 그들의 의제는 관철했다. 실패는 반공주의 때문이다. 세계 헤게모니를 위해 냉전과 반공을 내세운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진보세력이 실수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미국 진보세력의 선택이 불가피했고, 옳았다고 본다. 당시 민주당에는 트로츠키주의자부터 인종차별주의자까지 동거중이었다. 그 동거인 뉴딜동맹을 가능케 했던 대공황과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그들이 계속 남았다면, 아마 서로 발목만 잡았을 거다.
이 얘기는 진보정치세력의 영원한 숙제인 ‘홀로서기’와 ‘리버럴 세력과의 연합’ 문제에서 태도를 확실히 하자는 거다. 합치고 헤어지는 것을 명확히 하라는 거다. 지난 26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진보정당 대통합 합의문 추인을 2개월 뒤로 미뤘다. 범야권 통합을 겨냥한 진보정당의 통합 문제를 원점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진보정치세력 내 통합파와 독자파의 간극이 해소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둘을 계속 하나로 묶어놔야, 봉합밖에 안 되고 서로의 발목을 잡을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통합파가 의도하는 ‘통합의 효과’도, 독자파가 지키려는 ‘독자의 순수성’도 얻을 수 없다. 1987년 이후 진보세력의 꿈은 정치세력화였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전술인 ‘리버럴 세력과의 연합’이나 ‘독자 출마’ 두 가지 모두를 선거에서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다음 선거에서는 진보정당과 민주당이 합쳐서 나오라는 요구는 많은 국민들이 말하는 거다. 또 “진보정치를 하려는 내 자유가 왜 진보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제약돼야 하냐”는 독자파들의 주장도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진보정치의 독자성을 지키려는 사람은 그 독자성을 지키고, 리버럴 세력과의 연합으로 진보정치세력의 공간을 넓히자는 사람은 통합으로 가면 된다. 나랑 헤어지고 딴 사람과 못 산다고 막을 필요 없고, 딴 사람과 살러 가는데 가기 싫다는 사람 끌고 가서는 안 된다.
2005년 민주노총 대회는 노사정위 복귀를 둘러싸고 반대파들의 소란으로 두 차례나 무산됐다. 당시 단상 위에는 소화기 분말이 쏟아지는 등 독재시대 야당 각목대회를 방불케 했다. 그 후 민주노총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아름답게 이별해야, 재회도 기다려진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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