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무 논설위원
고삐 없는 원전을 이제는
시민의 상식과 민주적 통제의
우리에 가둬야 한다
시민의 상식과 민주적 통제의
우리에 가둬야 한다
일본에 지진해일이 밀어닥친 지 석달 열흘이 훌쩍 넘었다. 며칠 전 센다이공항엔 국제선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항 활주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해일의 공포를 떠올리면 자연재해 앞에 무력하지만 주저앉지 않는 인간의 의지에 경의를 갖게 된다.
문제는 후쿠시마 원전이다. 만일 원전이 없었더라면, 원전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비록 더디더라도 폐허를 딛고 일어설 것이다. 원전이 불타고 있는 후쿠시마 일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고, 방사성 물질은 일본 수도권 토양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비행기 테러로 아비규환이 됐던 뉴욕의 그라운드제로에 언제 참화가 있었느냐는 듯 초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사람 잡는 원전, 원전지옥이란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1~3호기 모두 노심의 핵연료가 녹아내렸고 압력용기 바닥에 구멍이 뚫려 격납용기로 떨어져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원전 내부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냉각재로 사용된 바닷물은 그대로 배출되면서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 내년 초까지 냉각장치를 복구해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냉각시키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지만 방사능 방출로 인한 환경파괴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묵시록적인 원전의 난이 이웃에서 일어났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21기의 원전에 2024년까지 14기를 더 짓겠다는 계획이 무덤덤하게 추진되고 있다. 계획대로 되면 원전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게 된다. 고리·월성 원전을 둘러본 그린피스 핵전문가 하리 람미는 한국의 원전 상황과 정책은 밀집도가 높고 폐쇄적이어서 충격적이라고 했다. 특히 비슷한 종류의 원자로를 몰아 짓고 고리·월성 반경 30㎞ 안에 100만명 넘게 살고 있어 원전 사고의 위험을 골고루 갖춘 나라라고 경고했지만 조용하다.
먹고살기 바쁘고 남북한 사이도 나빠져 원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수 있지만, 과학기술의 영역이고 따라서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해온 게 몸에 밴 탓이다. 그러기에는 우리 삶에 너무 큰일이다. 한번 터지면 대재앙이 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쌓이는 핵폐기물도 후세에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이다. 원전이야말로 시민의 상식에 근거하고 민주적 통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
어느 나라건 원전은 사업자와 전문가, 정부 당국이 한통속이 돼 비밀리에 밀어붙이는 게 예외 없는 속성이다. 이들 원전족의 이해관계는 견고하다. 거대자본이 들어가는데다 위험을 가리고 여론을 주물러야 자기증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자기증식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시민사회 외엔 없다. 독일은 정부 보조금 등으로 원자력에너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원전을 제어할 수 있었다. 일본이 화를 겪고도 독일처럼 못하는 것도 상식과 민주화의 잣대로 가늠할 수 있다.
원자핵의 안정성을 파괴해 에너지를 얻는데 그 결과로 나오는 방사능은 생명과 공존할 수 없다. 더욱 정교하고 큰 원전을 만들 수는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이나 폐기물의 방사능을 끌 수 있는 기술은 없다. 또한 노심 용융이 10만년에 한 번이 안 되도록 설계한다지만 현실에서 절대 안전한 원전은 없다. 이런 이유로 원전은 세계적으로 사양산업 대열에서 신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가교기술로 운명지어지고 있는 추세다.
집 옆에 원전을 지어도 좋다면, 핵쓰레기를 후대에 물려줘도 상관없다면 팔짱끼고 있어도 된다. 그럴 수 없다면 고삐 없는 원전을 상식과 민주주의의 우리 안에 가둬야 한다. 원전도시 후타바마치의 텅 빈 대로엔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펼침막만 동그마니 남아 있다.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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