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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움직이는 한반도, 움직이지 않는 한국 / 이종원

등록 2011-07-01 19:02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큰 틀 짜기가 한창인 동북아 정세,
그에 대한 포괄적인 전망 위에서
대북정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러설 보도를 접하면서 최근 일본의 러시아 전문가한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부쩍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올해 10월 미국과 함께 처음으로 동아시아 정상회담에 정식 멤버로 참가한다. 이어 내년 11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회의를 열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전략을 제시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라는 것이었다. 동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지역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미·중 주도의 전략구도에 대해 ‘대국 러시아’의 외교적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인지 모르지만 메드베데프 정권은 김정일 위원장을 내년 아펙 회의에 초청하려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번 방러는 일단 무산된 것 같다. 그러나 북·러 양쪽의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진다. 대미 관계개선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북한은 우선 생존기반 확보를 위해 중국에 대한 의존 강화를 선택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은 전략적으로 부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경제적으로도 독점적 지위에 있는 중국에 자원 등을 헐값으로 넘기고 있다는 불만도 전해진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지원과 투자를 수단으로 핵개발이나 남북관계 등 현안에 대한 압력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북-중 관계가 전반적으로 강화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마찰이 전해지는 것도 이런 압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대러 관계는 대중 의존을 상대화하는 중요한 카드가 될 수 있다.

북·러 접근의 실제적 효용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러시아가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경제지원이다. 원유가격 상승으로 러시아의 재정능력이 크게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북방영토에 대한 대규모 개발계획을 진행함으로써, 자신의 경제력 카드를 믿고 강경자세를 취해온 일본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북한을 지원할 능력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난관이 하나 가로놓여 있다. 이자까지 합쳐 총액 50억달러에 이른다는 소련 시대 이래의 국가채무 문제이다. 이를 탕감 또는 삭감하려는 교섭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아 새로운 지원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기대에는 북-미 교섭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외교력의 행사라는 측면도 있다. 이 부분도 미-러 관계가 그리 밀접하지 않은 현재에는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6자회담 프로세스의 재개에는 일정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취소되었지만 양자의 전략적 관심이라는 구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북·중·러’만이 아니다. 미-일 관계에서도 상황 타개를 위한 모색이 감지된다. 일전에 도쿄에서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정부 실무자, 관계국 외교관들이 모여서 북한 문제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비공식 의견교환이라 공식 발표와는 다른 솔직한 의견도 적지 않았다. 물론 주된 주제는 북한 상황에 대한 분석이었고, 이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의 공백과 더불어, 경색된 남북관계, 한국의 강경자세에 대한 우려 섞인 의견이 잇따랐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한국의 인질이 되었다” “당사자인 한국을 존중하면서도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도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발언들도 있었다. 한국이 ‘문제’가 아닌 ‘주역’이 되기 위해서도 큰 틀 짜기가 한창인 동북아 정세에 대한 포괄적인 전망 위에서 대북정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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