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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금융위기와 남성호르몬 / 김영희

등록 2011-07-06 18:45

김영희 국제부장
김영희 국제부장
“한쪽 성이 지배하는 환경은
특히 금융부문에선 좋지 않다
지나친 테스토스테론은 안 된다”
나라도 당황했을 것 같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에 이어 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새 총재 업무에 들어간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아직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이던 올해 2월 영국의 <인디펜던트>와 한 인터뷰 얘기다. 그는 기자에게 정원에서 장미꽃을 가꾸고 두 아들과 남자친구를 위해 요리하거나 직접 잼을 담그는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말부터 꺼냈다.

1999년 변호사 3700명을 거느린 미국계 법률회사 베이커앤드매켄지의 첫 여성 회장이 됐고, 2008년 주요 8개국(G8) 가운데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 되며 ‘여성 최초’ 기록을 경신해온 라가르드에게 기자가 그런 얘기를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그의 프랑스 집무실엔 수많은 캐리커처가 붙어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그물스타킹을 신은 자신이 남성 은행가에게 채찍질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혹시 ‘여자 마초’?

그런데 생각해볼수록 이 여성, 흥미롭다. 1893년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이래,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세계 어디서나 권력층에 진출한 여성들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지우려’ 노력해왔다. 여성성을 내세우는 흐름이 페미니즘의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았다지만, 권력을 쥔 여성들에겐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제 그와 사뭇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키어스턴 질리브랜드 미국 상원의원(뉴욕·민주)이 주도하는 여성의 정치 진출을 돕는 캠페인 ‘오프 더 사이드라인’은 “엄마와 아내로서의 요구”를 밝히고 여성의 차별성을 드러내라고 말한다. 세계 금융권력의 수장이 된 라가르드는 이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나아가 그는 금융위기의 원인이 ‘남성 지배 구조’에 있다고까지 말한다. “한쪽 성이 지배하는 환경은 특히 금융부문에선 좋지 않다. 남성들은 옆에 앉아 있는 다른 남성보다 얼마나 더 자신이 ‘남성스러운지’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하나의 방 안에 너무 많은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존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로 부각된 유로화의 문제에 대해 “(유로화) 창설의 ‘아버지’-어머니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달라!-로부터 잉태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테이블엔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경제나 금융에 약하다는 속설은 이미 부분적이나마 깨져가고 있다. 2007년 포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한 조사에선, 이사회 대표가 여성인 경우 평균적으로 더 좋은 실적을 냈다. 미국의 <시카고 트리뷴>은 개발도상국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의 주요 대출 대상이 여성인 이유도 투자회수율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사회주의자’ 스트로스칸보다 신자유주의에 가깝다고 일부에선 평가하는 라가르드에게 의문을 나타냈다. 하지만 나는 “리버럴 경향이지만, 많이 누그러진 리버럴”이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라가르드에게 적잖은 기대를 건다.

남녀의 ‘대결’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총재 출마를 선언하는 라가르드가 “이 기구에 다양성과 균형을 더하길 바라며, 나는 이 자리에 여성으로 선다”고 밝혔듯, 권력기구에서 남성호르몬을 덜어낼수록 지구촌 사회가 다양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신흥국에서 선진국까지 이익과 명분이 충돌하는 지금 국제사회에서 이데올로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조정과 협력의 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뛰어난 중재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라가르드뿐 아니라,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여성이 그런 능력은 더 낫다. 남녀 모두를 위해, 유리 천장은 깨질수록 좋다.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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