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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멀고 먼 금융개혁으로 가는 길/박순빈

등록 2011-07-12 20:02

박순빈  논설위원
박순빈 논설위원
저축은행 부실을 전체 금융시장
참여자와 납세자가 짊어지도록
한 책임은 누구한테 물어야 하나
지난 5월4일 이명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질타할 때부터 좀 시끄럽겠다 싶었다. 정부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대통령의 ‘진노’가 표출된 뒤 닷새 만에 국무총리실이 민관합동의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두달 안에 금융감독체계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태스크포스 활동 시한을 두달가량 더 늦추더니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로는 파행으로 갈 공산이 커 보인다. 일부 민간위원들이 정부의 들러리를 거부하면서 태스크포스는 뚜렷한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파장 분위기다. 결국 시끄럽기만 했다.

첫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저축은행 사태의 뿌리는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몇몇 금감원 임직원의 개인비리는 부차적인 문제다. 규제정책이나 감시·감독업무만 봐도 그렇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범금융당국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태스크포스는 주로 금감원만 수술대로 올렸다. 게다가 정부 쪽 위원 여섯 가운데 넷이 금융관료다. 개혁의 대상인데 어떻게 개혁을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일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개편된 지금의 금융감독체계는 처음부터 기형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책과 감독은 금융위, 감독보조와 검사는 금감원이 맡는 구조다. 엄격하고 치밀해야 할 건전성 감독과 현장검사 업무가 정책적 요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저축은행 부실화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가 잘 드러났다. 금감원의 검사부서에선 2008년부터 저축은행의 부실 위험을 감지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저축은행 부실을 덮고 가려는 정부의 압력에 이런 목소리는 묻혔다. 오히려 정부는 후순위채권 발행을 독려하는 등 부실 뇌관이 더 커지도록 했다. 자산관리공사(캠코)의 구조조정기금을 5조원 넘게 투입해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도 처리해줬다. 오는 9월부터 시작될 2차 구조조정에 또 약 20조원의 공적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축은행 부실을 전체 금융시장 참여자와 납세자한테 떠넘기는 꼴이다.

금융서비스의 본래 기능은 지급결제와 자금중개다. 여윳돈을 거둬 돈 가뭄이 심하거나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는 게 금융서비스다. 여기서 감독기관은 늘 전체 시스템의 안정과 시장 참여자의 이익을 돌봐야 한다. 선진 금융감독기구는 금융수요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반대다. 감독기관이 대부분 서비스 공급자 편이다. 이해관계로 똘똘 뭉쳐 있는 한 줌의 무리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수많은 수요자들보다 훨씬 더 센 힘을 발휘했다. 정부나 감독당국에 대가성 뇌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우선 정보의 우위와 전문성을 가지고 당국자들을 포획한다. 여러 일상적 편의도 제공하면서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맺는다. 지금의 금감원에 대해선 공급자들이 아예 생존기반까지 제공하고 있다. 금융기관이 내는 분담금과 수수료가 전체 수입예산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감독기관이 감독 대상한테 구조적으로 사로잡힌 꼴이다. 그리고 감독기관의 공적 행위는 시나브로 공익과 멀어졌다.

위기는 가끔 혁신을 부른다. 선진국일수록 큰 위기를 겪은 다음에는 위기의 뿌리를 찾아내서 제거하고, 체계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운다. 반면에 우리 금융계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반짝 떠들썩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흐지부지된다. 그래서 외환위기와 카드사태를 겪고서도 비슷한 성격의 위기가 되풀이된다.

내일부터 국회의 저축은행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제발 네 탓 공방 같은 것 하지 말고, 진지하면서도 내실 있게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 벌어졌으면 한다.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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