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검찰 불신은 칼집 속의 칼까지 함부로 휘두른 탓 권력 눈치 그만 봐야
새 검찰총장 후보자가 곧 지명된다. 물망에 오른 이들은 30년 가까이 검사 일을 해왔다. 검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를 눈앞에 뒀으니 개인으로선 가슴 벅찬 일이겠다. 하지만 그 자리가 영광스러운 벼슬만은 아니다. 전임자 가운데 2년 임기를 마친 이는 몇 없다. 많은 이가 오욕과 회한, 또는 조롱 속에서 자리를 떠났다. 그럴 때마다 검찰의 위기라는 말이 나왔다.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2년 전 전임 대통령의 죽음까지 부른 박연차 사건 수사 실패로 총장이 사퇴하고 후임 총장 후보자까지 낙마했다. 검찰 처지에선 어렵지 않은 때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검찰총장은 짐을 지고 그런 위기를 지나야 하는 자리다.
이번은 더하다. 새 총장을 맞이하는 검찰은 뒤숭숭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후유증이다. 수십년 지속된 검찰의 경찰에 대한 압도적 우위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크게 흔들렸다. 위상과 권한이 줄 것이라는 조직의 위기감도 크지만, 자존감의 균열도 작지 않아 보인다.
이제 검찰의 항변은 싸늘한 눈길 앞에서 사그라지기 일쑤다. 검찰을 편드는 사람은 도무지 찾기 어렵다. 조직의 이해가 걸린 사안에 자주 동원했던 줄사표나 평검사회의 등의 집단행동도 이번엔 역효과만 냈다. 대검 간부들의 사표는 총장 사퇴를 압박하는 내부 쿠데타, 어른스럽지 못한 투정으로 비쳤을 뿐이다. 외부와 절연된 집단사고(Group Think)의 함정에 빠져 상황 분별을 제대로 못한 결과다. 검찰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두껍다.
그리된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난 몇년 동안 검찰은 온갖 무리하고 궂은 일을 도맡았다. 대부분 정권의 이해에 맞는 사건이었지만, 거악이나 범죄의 척결도 아니었고 법률적으론 유죄를 기대하기도 힘든 것들이었다. 실제로도 무죄 판결이 잇따랐다. 애초 검찰이 나섰어야 할 일이었느냐는 의문은 당연하다. 예컨대, ‘피디수첩’ 사건은 헌법상 언론 자유의 본질을 위협하는 수사였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기소는 법원의 조정 결정을 따르는 게 위법이라는, 기막힌 논리에 터잡고 있었다. 검찰이 말대로 준사법기관이라면 마땅히 삼가야 했던 일이었다. 법원이 입법·행정부의 결정에 대한 판단을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면 그와 똑같은 이치다.
지금의 검찰 불신은 칼집에 있어야 할 칼을 함부로 휘두른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나마 날카롭지도 않았으니 더 보기 흉했다. 그런 터에 급기야 검찰 조직이 자신의 이해를 위해 정치권을 수사 등으로 압박한다는 반발까지 샀다. 함부로 휘두르는 칼을 뺏어야 한다는 데 뜻이 모일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 자제론도 있긴 했다. 대선 직전인 2007년 검찰 안에선 비비케이 등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를 둘러싼 의혹 수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성호 당시 법무부 장관부터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나름대로 온당한 주장일 수 있지만, 정치권력의 동향에 눈치 빠르게 움직인 것은 마찬가지라는 비판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새 검찰총장의 임기는 내년 대선 이후까지다. 임명권자로선 정권 말기의 권력 관리를 위한 인사를 하고 싶어할 만한 상황이다. ‘검찰총장을 통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지휘를 할 수 있는’ 법무장관에 자신의 비서를 기용하려는 구상이 바로 그렇다. 검찰총장도 그렇게 뜻대로 움직이길 기대할 것이다. 그리되면 검찰은 또다시 함부로 휘두르는 칼로 전락한다. 가장 잘 드는 칼은 칼집 속에 있다고 했다. 새 총장이 그런 자제와 품격을 갖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저 꿈일까?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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