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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역사교육과정 개정 전면 재검토해야 / 주진오

등록 2011-07-20 19:25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지난 6월30일 국사편찬위원회는 2011 역사교육과정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된 역사교육과정 개정안은 공청회 현장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전국역사교사모임도 성명을 발표하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번 개정안은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촉박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겨우 3개월의 작업 결과물을 가지고 공청회를 한 뒤 8월에 고시를 한다면 결국 시안을 그대로 확정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그 내용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정책위가 제시한 방안은 한국사를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통사로 배우는 형식을 초·중·고교까지 세 번 반복하겠다는 것이다. 중학교에서는 정치·문화사 중심으로, 고등학교에서는 사회경제사·대외관계사·사상사를 중심으로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분리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학생들은 비슷한 통사를 계속해서 반복함으로써 역사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될 것을 역사교사들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

둘째, 근현대사의 비중이 지나치게 줄어들었다. 중학교에서 전근대와 근현대의 비율은 7 대 3, 고등학교에서는 5 대 5로 결정하였다. 그 가운데 해방 이후 현대사의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현행 교과서의 경우 중학교에서는 전근대사 비중이 높은 대신 고등학교에서는 80% 이상 근현대사를 위주로 배우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학교는 그대로 두고 고등학교의 근현대사를 대폭 줄인 것이다. 특히 해방 이후의 역사를 거의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교육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의 한국사 교육은 3 대 7 정도로 근현대사 중심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아니면 아예 중학교는 전근대사만 배우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근현대사만 배우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셋째, 교육과정은 8월에 확정하고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과 편찬상의 유의점은 12월까지 발표한다고 했다. 그런데 중학교 교과서는 내년 3월까지 제출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교육과정이 고시되고 7개월, 집필 기준이 발표되고 3개월 만에 교과서를 쓰라는 것이다. 지난 교육과정의 경우 고시 이후 집필기간을 2년 이상 보장하였다. 이렇게 교과서 개발이 졸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집필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은 차치하고라도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개정안에서는 학습량 20% 감축과 쉽고 재미있는 교과서를 요구하고 있지만, 학습내용 성취 기준을 보면 기존 교과서 내용을 축약해 대부분 집어넣었다. 실제로 집필하다 보면 교육과정 성취 기준에 맞춘 분량의 제약 때문에 재미있게 써보려던 부분이 가장 먼저 삭제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성취 기준 자체가 대폭 축소되어야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교과서가 가능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사 필수를 중심으로 역사교육 강화방안을 제시했지만, 지난 교육과정에 견줘 역사수업 시간을 반이나 줄여놓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전혀 없는 조처였다. 그마저도 교과서는 집중이수제에 따라 한 학기 만에 마치라고 하고 있다. 집중이수제를 우선 폐지하고 충분한 수업시간을 보장해야 쉽고 재미있는 교과서도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개정작업이 전체적인 역사교과서 편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이 현행 교과 체제를 그대로 따르면서 내용만 부분적으로 개정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항상 교과목 편제를 변화시켜 왔다. 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라는 현재의 체제도 현 정부가 들어선 뒤 2007년 교육과정을 시행해보지도 않고 개정한 결과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이 세계사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세계사적 흐름을 이해한 바탕 위에서 한국사를 공부한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다시 ‘역사’를 필수화하고 한국사와 세계사 관련 과목을 선택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역사교육과정 개정작업은 8월에 고시를 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역사학계와 현장 교사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 역사교육 현장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곧 교육과정이 또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교육과정을 1~2년 만에 바꾸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과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개정작업을 중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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