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 빗물연구센터 교수
피해 지역마다 대규모 시설 만들면
엄청난 세금이 들어갈 것이다
빗물관리의 패러다임을 소규모의
다목적 분산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엄청난 세금이 들어갈 것이다
빗물관리의 패러다임을 소규모의
다목적 분산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올해도 수도 서울에 후진국에서나 보아왔던 침수피해가 발생하였다. 해마다 반복되는 도시의 침수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빗물저류조와 하수관 용량 증설이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수십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므로 어떤 대안이든 검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적·경제적·사회적으로 채택 가능한 것을 신중하게 택하여야 한다.
도시의 하천변이나 지하에 대규모 빗물저류조를 만드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든다. 설사 만들더라도 1년 중 사용하는 날은 며칠 안 된다. 정작 계획홍수량보다 많은 비에 방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도심에 많이 있는 유수지나 빗물펌프장의 현재 관리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때 모아지는 더럽혀진 빗물은 홍수방지라는 한가지 목적 이외에는 사용하지 못한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처리와 운반에 엄청난 에너지와 유지관리 비용을 또 내야 한다.
하수관거 용량을 증설하는 것도 말로는 간단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도시의 하수관거는 인체의 정맥과 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분만 늘린다고 해서 전체 용량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큰비가 올 지역을 미리 안다면 그 지역만 증설하면 되지만 어디에 큰비가 올지 모르므로 도시 전체가 홍수의 불안전지대가 된다. 골목길마다 하수관 공사를 한다면 시간·비용은 물론이고 교통 때문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현재 서울 광화문 지역에서 하고 있다는 하수도 증설 공사의 어려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침수피해가 난 지역마다 대규모 시설을 만들어준다면 엄청난 세금이 들어갈 것이고,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피해지역에서는 불만이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 방법 모두 기술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르나 경제적·사회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빗물 관리의 패러다임을 소규모의 다목적 분산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첫째는 빗물을 떨어진 자리에서 소규모로 위에서부터 관리하는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의 평평한 도시에서는 대규모 빗물저류조를 만들어 밑에서 관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산 중턱에 소규모 빗물저류조를 두어 위에서 관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건물의 홈통이나 도로의 측구, 운동장 등에 소규모 빗물저류조를 만들어 하수도로 들어가는 빗물의 양을 줄여주면 하수관거의 용량을 늘리지 않고도 큰비에 대비할 수 있다. 건물이나 주차장의 자투리 공간을 사용하거나 안 쓰는 정화조를 이용하면 아주 싸게 만들 수 있고, 잘만 디자인하면 빗물저장조를 거리의 예술품으로도 승화시킬 수 있다. 건설이나 유지·관리에 지역의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둘째는 다목적 사용이다. 빗물을 깨끗하게 모으면 홍수조절은 물론이고, 수자원 확보, 단수 등 비상시에 사용할 물, 텃밭을 가꾸는 물 등 여러 가지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더울 때 지붕이나 거리에 뿌려주면 냉방에 따른 전력 피크도 줄일 수 있다.
셋째는 정책을 잘 만들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에서는 용적률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세금 한 푼 안 쓰고도 3000t짜리 다목적의 빗물이용시설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외에 세제 혜택이나 빗물크레디트제 등 정책을 개발하고 정부가 솔선수범을 하여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한다면 아주 빠른 시간에 적은 돈으로 도시 전체를 침수피해로부터 보호하고 도시의 물 자급률을 높일 수 있다. 이미 수원시 등 50개의 시·군에서 빗물조례를 만들어 빗물을 버리는 대신 모아서 활용하도록 하는 이른바 ‘레인시티’가 생겨났다.
시민들은 돈을 잘 쓰는 정부보다는 머리를 잘 쓰는 정부를 더 좋아한다. 이번의 피해지역이나 상습 침수구역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의 빗물관리를 도입하면 적은 예산으로 이른 시일 안에 기후변화에 강한 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은 돈을 잘 쓰는 정부보다는 머리를 잘 쓰는 정부를 더 좋아한다. 이번의 피해지역이나 상습 침수구역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의 빗물관리를 도입하면 적은 예산으로 이른 시일 안에 기후변화에 강한 도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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