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돈
‘해군기지 중단 및 재논의’ 제주지역 교수협 공동대표
아름다운 ‘생명·평화’의 땅 지키려
해군기지 반대 외치는 제주도민에
‘종북좌파’의 ‘색깔’을 덧칠하는
정부와 군당국에 우리는 절망한다
해군기지 반대 외치는 제주도민에
‘종북좌파’의 ‘색깔’을 덧칠하는
정부와 군당국에 우리는 절망한다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은 곳곳에 ‘해군기지 결사반대’의 노란 깃발만 펄럭일 뿐 겉으로는 평온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마을은 곪을 대로 곪아 있다.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마을사람들끼리 찬반 양쪽으로 갈려 서로 등 돌리고 말 않고 살아온 세월이 4년이 넘었다. 일이 순조롭게 풀려 다시 옛날의 그 따스하고 정겨운 일강정(一江汀)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이곳에 올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마을에서 내려와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중덕 바닷가로 들어가는 길목 요소요소엔 검은 전투복을 입고 방패를 든 전경들이 지켜 서 있고, 그 옆에서는 사복경찰이 무전기를 들고 출입자들의 동태를 어디론가 보고하느라 바쁘다. 외돌개에서 출발해 이곳을 거쳐 월평으로 향하는 올레꾼들은 이런 낯선 광경을 접하고 혹 길을 잘못 들어섰나 쭈뼛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통 관심을 갖지 않고 묵묵히 길을 재촉하던 올레꾼들의 행태도 많이 바뀌고 있다. 기지가 들어서 이 올레길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반대 서명지를 받아 들곤 한다. 주 진입로 들머리엔 연약한 제주 아낙들이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앉아 비장한 각오로 경찰의 강제진압에 대비하고 있다.
경찰의 강제진압설이 흘러나오면서 지금 강정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초긴장 상태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경찰 진압병력들을 ‘토벌대’라 칭한다. 이 말 속에 담긴 4·3의 아픈 상흔을 우리는 기억한다. 미군정 경찰의 1947년 3·1절 발포 사건을 계기로 격화된 총파업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육지부에서 대규모의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 군병력이 ‘토벌대’란 이름으로 들어온다.
이들 가운데 특히 응원경찰과 극우 성향의 서청대원들이 도민들에게 저지른 악질적인 백색테러와 만행이 순박한 제주도민들의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이듬해 ‘단정 반대’의 기치를 들고, 4·3 항쟁의 봉홧불을 올리는 촉매제가 되었다.
‘토벌’의 사전적 의미는 도둑 떼나 반란자의 무리를 군사로 무찌른다는 것이다. ‘토벌대’란 과격한 표현에는, 그 옛날 4·3 때도 그랬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 사람들을 여전히 국가사업에 훼방을 놓는 변방의 반란자 무리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강한 분노의 감정이 묻어 있다. 통일된 독립국가를 염원하며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제주도민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 피의 학살극을 벌인 4·3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아름다운 ‘생명·평화’의 땅을 지키고자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는 제주도민들에게 ‘종북좌파’의 색깔을 덧칠하는 정부와 군 당국에 우리는 절망한다.
비용·편익 분석을 해보더라도 강정 바닷가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여 얻는 이익이 용암 단괴로 이루어진 이 지역의 독특하고 수려한 해안 경관이 빚어내는 심미적 가치와 환경·생태적 가치를 보존하여 얻는 이익보다 더 크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어도의 해양자원을 보호한다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안보위협을 근거로, 한번 파괴하면 영원히 회생할 수 없는, 만인이 다 같이 누리고 나누어야 할,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어야 할 천혜의 자연을 볼모로 잡는 처사는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그 바닷가 구럼비에 단 한 번이라도 가보시라.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개발론자들의 눈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바닷가 돌덩이들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마음을 비우고 무심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시라. 영성의 기운으로 충만한 자연의 숭고미에 어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서울지역에서, 그리고 제주지역 곳곳에서 강정으로 향하는 희망비행기, 희망버스를 탑승하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이 정부가, 군대가 진정 국민의 정부, 국민의 군대를 자처한다면 이 지순한 국민의 염원을 거역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관계자들이 모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냉정하고 차분하게 따져보기 바란다. 강제진압, 공사 강행으로 물리적 충돌이 야기할 비극의 사태는 미연에 막아야 한다. 강정 주민들의 눈물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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