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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국립의료원 매각은스칸디나비아 3국 배신행위 / 변광수

등록 2011-08-31 19:23

변광수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변광수 한국외국어대 스칸디나비아어과 명예교수
스칸디나비아 3국은 전후 서울에
동양 최고의 국립의료원을 설립했다
이 ‘서민 공공병원’의 매각·이전은
북유럽인들의 인류애를 배신하는 것
1958년부터 53년간 ‘서민 공공병원’으로 임무를 충실히 해온 국립중앙의료원이 ‘수익성’의 잣대에 밀려 매각·이전되고 그 자리에는 정형외과를 비롯한 뷰티콤플렉스, 관광호텔 등이 들어선다고 한다. 세대가 바뀌어 기억을 상실한 탓인지, 국립의료원 탄생의 감동적 역사와 가치가 시장 논리에 압도당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국립의료원 50년사>(2008)를 보면 1950년부터 53년까지 한국전쟁에서 한국과 유엔군의 인명 피해만 약 150만명(한국인 100만명)에 달했다. 급증하는 군인·민간인 사상자 치료를 위한 의료시설, 의약품,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전쟁 발발 후 스웨덴은 부산에 군 야전병원을, 덴마크는 적십자 병원선을 부산항과 인천항에, 노르웨이는 이동외과 병원을 미1군단 예하부대에 파견하여 의무지원과 민간인 진료를 담당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되자 덴마크와 노르웨이 의료지원단은 귀국하였고 스웨덴만 1957년까지 남아서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들 3국이 진료한 전쟁부상자들은 민간인을 포함해 대략 21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3년간의 전화로 폐허가 된 이 땅에 아직도 입원 치료를 요하는 전상자와 피란민 환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한국 정부는 스칸디나비아 3국이 의료지원 활동을 계속해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3개국은 유엔한국재건단(UNKRA·운크라)과 공동으로 서울에 국립의료원(메디컬 센터)을 설립하여 5년간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각기 150만달러의 연간운영비를 분담하여 6년간의 준비 끝에 1958년에 개원했다. 이 종합병원은 당시 동양 최고 수준의 장비와 시설을 갖춰 의료시설의 현대화, 의료기술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의사와 간호사를 교육하여 의료인 양성에도 선도적 구실을 다했다. 특히 의료시혜를 크게 확대하여 영세서민도 적은 부담으로 진료를 받게 하여 국립의료원의 존재 가치를 돋보이게 했다. 병원 개원 후 10년이 되는 1968년에야 마침내 운영권이 한국 정부로 이양되었다.

국립의료원장을 지낸 한 원로 의사는 의료원 초창기에 인턴 수련을 스칸디나비아 의사들한테 제대로 받은 행운아였다고 말하며 그들의 정성 어린 지도에 감복했다고 한다. 동족 간의 싸움으로 상처투성이인 한 후진국에 파견된 의료진은 인턴이나 레지던트 같은 초년병 의사들이 아니고 노련한 과장급 수준의 베테랑 의사들이었다. 이들이 환자를 보살피는 자상하고 겸허한 자세와 진정성에서 그는 인류애와 인도주의의 참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2008년 10월 국립의료원은 개원 50돌을 기념하는 큰 행사를 열었고 스칸디나비아 3국의 국립병원장들과 주한 대사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그들의 고귀한 인류애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심심한 사의를 전했다. 그런데 불과 1년 반이 지난 2010년 4월에 보건복지부는 산하기관인 국립의료원을 법인화하고 매각·이전을 결정했다. 더 많은 수익을 위한 ‘효율적 운용과 경쟁력’ 때문이라고 한다. 이 병원은 운영권이 한국 정부로 이관된 이후 재정 지원의 소홀로 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서민병원으로 전락하였다. 이제 그것도 모자라 아예 부자 동네 서초구로 밀어내고, 정부와 상관없는 법인체로 독립했으니 자활의 길로 나서라는 것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6·25전쟁 기념일에 우리는 유엔군 참전 노병들을 초청하여 60년 전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감사할 줄 아는 의리 깊은 국민으로 자화자찬한다. 의료원 부지의 개발이익이 얼마나 되고 그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알 순 없지만 북유럽인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숭고한 인류애 정신을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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