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남성들이 성적 쾌락을 위해 남용하는 비아그라가 박영순씨에겐 삶의 희망이다. 박씨는 비아그라 100㎎ 한 알을 쪼개서 하루에 세번 복용하고 있다.
비싼 치료비에 고통받는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
폐동맥 고혈압 특효 치료제인 비아그라
근이영양증 합병증 발견 위한 정기검사
다발성 경화증 치료 신약 모두 ‘비보험’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야 세금도 내지요”
폐동맥 고혈압 특효 치료제인 비아그라
근이영양증 합병증 발견 위한 정기검사
다발성 경화증 치료 신약 모두 ‘비보험’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야 세금도 내지요”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에게 죽음은 일상이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환자 자신과 가족은 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 희귀 난치성 질환은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적절한 치료방법과 치료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을 말한다.(희귀 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 2조) 현재 알려진 희귀 난치성 질환은 6000여개에 이른다. 희귀 난치성 질환자로 등록되면 의료보험상 본인부담금의 10%만 내는 ‘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혜택을 받는 질환은 1000여개에 불과하다. 때문에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센터의 누리집(helpline.cdc.go.kr)에는 ‘산정특례 질환 등록’을 요청하는 구구절절한 목소리가 수백건 쌓여 있다.
희귀 질환자로 등록돼 보험과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는다 해도 부담이 모두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약이나 희귀 약품처럼 아예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경우엔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여기에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일부 정기검사도 여전히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익숙해진 병의 고통보다 치료에 따른 경제적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몸의 고통에서는 초탈했지만, 경제적 아픔에 눈물을 흘리는 희귀 난치성 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폐동맥 고혈압’ 박영순씨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박영순(49·여)씨는 겉으로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집을 안내하려고 앞장서자 거친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월세 20만원, 10평 남짓의 다세대주택 안에는 커다란 ‘산소발생기’가 들어차 있었다. 폐동맥 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가는 동맥의 이상으로 혈압이 상승하고 이 때문에 폐세포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확진 뒤 평균 생존기간이 3년 미만일 정도로 극히 위험한 질병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최근 치료법이 많이 생겨 환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현재 1000여명의 국내 환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치료제는 놀랍게도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다. 뛰어난 혈관확장 효과 때문이다.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성적 쾌락을 목적으로 남용되는 비아그라가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에겐 ‘생명의 끈’이나 다름없다. 박영순씨도 2009년부터 비아그라 100㎎을 하루에 3번 나누어서 복용하고 있다. 한 알의 가격은 1만3000~1만5000원이다. 보험 혜택이 없기 때문에 비아그라 약값으로만 한달에 40만~50만원을 지출한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에 대비해 응급용으로 사용되는 벤타비스는 앰풀당 2만8000원이다. 효과가 빠르고 좋아서 많이 사놓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 이뿐만이 아니다. 폐동맥 고혈압 치료에 필수인 이뇨제와 평소 지병인 간장질환 치료제까지 먹어야 한다. 다행히 의료비가 면제되는 의료비 지원 대상자여서 진료비와 이뇨제 등은 부담이 없다. 하지만 비아그라와 벤타비스는 여전히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으로 묶여 있다. 폐동맥 고혈압 환우회에서 끊임없이 관계기관에 ‘급여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허가가 나지 않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기 때문에 박씨는 경제활동이 불가능하다. 남편이 받는 월급 150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비아그라만이라도 보험 혜택을 받으면 살 거 같아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뒤 박씨는 산소발생기에 다가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근이영양증’ 한성민씨
이름도 생소한 ‘근이영양증’은 온몸의 근육세포가 괴사하는 근육질환의 일종이다. 유전적 요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발병 원인과 치료법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병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고, 발생된 합병증에 대해 적절하게 치료하는 정도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한성민(37)씨는 9살 때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진을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병의 진행이 더딘 편이다. 덕분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전자계산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현재는 재택근무로 한 인터넷 교육업체에서 일도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온몸이 꽁꽁 묶인 상태로 각도 조절 침대에서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제는 팔의 힘도 빠져 손가락 정도만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 기구하게도 한성민씨의 형도 같은 병이었다. 형은 이미 2002년에 세상을 떠났다. 담담하던 한씨도 이 대목에선 울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몸은 대부분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기도 마찬가지다. 근이영양증은 심장·위장과 같은 장기에도 영향을 준다. 한씨도 현재 심장 합병증이 의심돼 심장 박출을 강하게 하는 약을 먹고 있다. 약값은 다행히 보험 대상이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받는 심장초음파와 자기공명촬영(MRI) 비용이 부담이다. 심장초음파는 25만원, 자기공명촬영은 부위에 따라 50만~100만원이 든다. 미리 발견하고 손을 쓰지 않으면 합병증이 번지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사는 필수다. 하지만 보험 대상이 아니다.
한씨는 “부모님이 나를 뒷바라지하시느라 경제활동을 중단하신 상태고, 30평 아파트 한 채가 가진 것의 전부인 상태에서 검사비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에서 얼마 안 되는 약값을 지원하고 생색을 낼 게 아니라, 환우들에게 필수적이지만 비싸서 살 엄두가 안 나는 각도 조절 침대 구입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씨의 침대는 기증받은 것이다.
# ‘다발성 경화증’ 노동주씨
다발성 경화증은 중추신경에 반복적으로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신경이 닿는 모든 곳에서 질환이 발생한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노동주(28)씨는 2001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밥을 먹기만 하면 구토를 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온갖 병원을 전전하다가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자기공명촬영을 통해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다발성 경화증에는 스테로이드 치료가 권장된다. 꾸준히 주사를 맞다 보니 근육이 불어나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너 몸 좋아졌다”며 놀라기도 했다. 투병을 하는 동안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했다. 노씨도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들어갔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2학년이 되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안과에서도 원인을 몰랐다. 결국 대형병원에서 다발성 경화증의 합병증으로 진단을 받았다. 이번엔 눈으로 온 것이다.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생계를 위해 안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씨의 진짜 꿈은 ‘영화감독’이다. 이미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를 세편이나 찍어서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새 영화를 만들려고 좋은 제작자를 찾고 있다”며 이 이야기를 꼭 기사에 넣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어려운 실정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병의 관리가 우선이다.
이 병은 언제 어디서 어떤 증상이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다. ‘시한폭탄’과 같다. 최근에는 멀쩡히 걷다가 졸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씨에겐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맙테라’라는 신약이 나왔기 때문이다. 표적항암제로 알려진 이 약에서 다발성 경화증의 재발을 막는 효과가 발견된 것이다. 이미 주변의 환우들이 이 주사를 맞고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신약이라 보험 대상이 아니다. 주사 한번에 200만~300만원이다. 초기에는 한달에 네번을 맞아야 한다. 어마어마한 액수다. 노씨는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야 나라를 위해 세금도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관계당국이나 제약회사에서 환우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7월31일 기준으로 등록된 희귀 난치성 질환자는 65만여명이다. 하지만 이는 산정특례 대상인 1000여개 질환 환자의 통계이므로, 나머지 5000여개 질환의 환자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비보험 대상 질병은 병원·보건소 등 집계 기관이 다르기 때문에 희귀 난치성 환자의 정확한 통계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할 뿐이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정부는 듣고 있는 것일까. 예산 추이는 정부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9년 43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희귀 난치성 질환 의료비 지원예산은 2010년 390억원, 2011년 320억원으로 급감했다.(그래프 참조)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보건복지부 직원은 “과거 예산은 본인부담금을 20%에서 10%로 낮추는 과정에서 다소 여유있게 잡은 것이었고, 현재가 적절한 예산이라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차갑다. 근이영양증 환우회 주유희 명예회장은 “올여름부터 호흡보조기 임대 보조금이 기존 80만원에서 65만원으로 깎였다”며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발성 경화증 환우회 정애란 상담실장은 “예산이 늘어나야 혜택을 보는 환자들이 많아질 텐데 오히려 깎인다면 환자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양봉석 환자복지센터 소장도 “등록 환자가 점차 늘어나는 상태에서 비급여 항목이 많은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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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이영양증’ 한성민씨
한성민씨가 그나마 최소한의 경제적 활동을 하고 몇 시간이라도 설 수 있는 것은 각도 조절 침대 때문이다.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고가의 보장구들은 지원에서 제외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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