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중국이 우리 국가전략의 화두가 된 지도 꽤 됐다. 정작 중국인들은 그 호명에 대해 부담스러워하지만 세계가 미·중이라는 두 거인이 경합하거나 협조하는 ‘주요 2개국(G2)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의 영향력을 온전히 평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최근 유럽의 경제위기 대처를 두고 세계경제가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때처럼 다시 중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을 보며 새삼 중국의 성장이 세계인의 역사발전관과 세계질서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되짚어 보게 된다. 우리는 한쪽으로 중국위협론을 제기하면서 다른 쪽으로 세계 경제위기의 구원투수론을 말한다. 모순이다.
탈냉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 되었으며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이념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 성장이 불가분의 연관을 맺고 있다는 믿음도 커졌다. 그러나 중국의 고속성장이 이러한 상황과 믿음을 흔들어댔다. 그동안 서방세계는 중국이 어떻게 더 철저히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가를 중국 경제발전의 전제로 삼고, 경제발전이 중국의 민주화를 추동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중국은 국가 통제 속에서 시장을 확장하고 공산당의 독재 아래서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외교안보에서 서방의 규율을 일정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색깔을 내며 세계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30년간 민주적 공간이 조금씩 열리기는 했으나 중국의 고속성장이 공산당 통치 아래 이루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경제발전이 자유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결정적인 변수인지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었다. 그리고 논란과 상관없이 중국의 사례는 지구상의 수많은 권위주의 정권들한테 하나의 전범으로 인식되어 ‘중국식 모델’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물론 자유와 법치에 기초한 시장경제가 중국의 국가발전을 이끌었다며 ‘중국식 모델’을 부정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 혹은 중기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식 모델’을 추구하는 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들이 배우고자 하는 ‘중국식 모델’은 이미 존재한다. 중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공동 협력하는 경제특구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작년부터 북한도 이 대열에 동참하였다.
사실 우리가 중국에 대해 얼마나 ‘서방 따라 배우기’를 잘하는지 판정하고 있을 사이, 중국은 서방의 공식을 다소 비튼 발전을 해오면서 거꾸로 서방이 만든 질서와 기준을 조금씩 변형시켜왔다. 중국은 국가간 자주와 친선을 강조하며 인권·민주주의라는 서방의 조건부 지원과 달리 ‘조건 없는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들의 후원세력이 되었다. 미국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신장과 국가 고립 사이에 양자택일을 강요받아온 각국의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에게 중국이 제3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이미지는 중국의 다자협력 이미지와 대비된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미국 중심의 일초다극체제가 쇠퇴하고 있지만 서방이 제대로 중국 읽기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도 중국의 성장이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중국의 성장을 객관적인 현실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역할과 의무를 부과하려는 노력 대신에 중국의 위협 증가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인다. 어쩌면 우리는 초강대국의 문턱에 들어선 중국과 냉전시대의 호전적 후진국인 중국 사이에서 후자를 보고 싶어 하는 의도적 착시현상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능력을 오판하여 대중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하며, 중국위협론에 집착하여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성장에 부합하는 의무와 역할을 다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정말 중국이 위험한 대국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 있다.
결국 서방을 따르지 않는 중국을 탓하기보다는 중국의 논리를 꼼꼼히 따져보고 기존 질서에의 편입을 넘어서 세계 질서를 변화시키고 있는 중국의 힘의 실체와 연원을 객관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중국’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는 중국’이다. 전 통일부 장관
연재이종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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