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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볏과 벼슬 / 강재형

등록 2011-09-16 19:36

다음에 설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스무고개처럼 하나씩 짚어 나가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만한 무엇이다. 이것은 동물성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의 생김을 사물에 빗대어 구별하기도 한다. 장미처럼 생긴 게 있고, 완두콩 또는 호두 모양과 비슷한 것도 있다. 흔히 ‘관’(冠)을 붙여 장미관, 완두관이라 하는데 이 둘이 섞이면 호두관이 나온다. 이것을 가리키는 방언은 참으로 다양하다. 이것의 주인이 여염집 살림에서 빠질 수 없기에 그럴 것이다. 제주에서는 고달이라 하고, 강원도에서는 면두, 평안도에서는 멘두 또는 벤두미라고도 한다. 경상도 방언으로는 배실, 경북 일부에서는 장다루로 불리기도 한다. 같은 말로는 변두, 육관(肉冠)이 있다. 이것의 생김은 맨드라미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맨드라미를 계관(鷄冠)이나 계두(鷄頭)라 이르기도 한다. 김유정의 <동백꽃>, 박경리의 <토지>를 비롯해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도 등장하는 이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빛깔이 붉고 시울이 톱니처럼 생긴, 닭이나 새 따위의 이마 위에 세로로 붙은 살 조각’(표준국어대사전)이다.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덕하고 면두를…”(<동백꽃>)의 ‘면두’(멘두, 벤두)는 앞에서 보았듯이 방언이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는 ‘벼슬’이라 했다. 사전은 ‘벼슬’도 방언으로 다룬다. “닭장에서 비어져 나간 한 마리가… 볏을 세우며 달아난다”(<토지>)의 ‘볏’이 이것을 제대로 가리키는 말이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작에는 ‘볏을 가진 족속’이라는 표현처럼 ‘볏’으로 썼다.

볏은 암탉보다 수탉의 것이 돋보인다. 우람하게 솟아오른 볏에 대감마님 수염처럼 늘어뜨린 아랫볏은 수탉의 위엄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마당을 다스리는 수탉은 유난히 화려한 볏을 내세워 한껏 위세를 부린다. 하지만 이 수탉의 위엄은 오래가지 못한다. 권위의 상징인 볏이 사실은 ‘가발’이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볏’은 ‘벼슬’이 아니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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