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반년은 걸릴 것이다
그동안 교육자치의 대원칙을
존중하며 교육행정을 펴야 한다
나올 때까지 반년은 걸릴 것이다
그동안 교육자치의 대원칙을
존중하며 교육행정을 펴야 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구속기소되어 직무가 정지되면서 임승빈 부교육감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하여 “정치적 이념과 철학에 이끌려 망가진 교육 현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문제 있는 일부 학생들의 인권만 생각하면 다수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은 누가 지키느냐. 바이러스처럼 전국으로 확산된 무너진 교육현장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임 권한대행을 불러 곽 교육감이 한 것을 승계해선 안 되고 교육이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하겠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곽 교육감의 ‘후보자 매수’ 혐의에 대한 법적 판단은 법정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곽 교육감은 교육감 직위를 보유한다. 부교육감은 교과부에서 파견되기는 하나, 민선 교육감의 추천에 의해 임명되는 자리로 교육자치를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교과부 차관이 위와 같은 직설을 쏟아내니 그 노림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설 차관의 주장과 달리, 교육현장이 망가진 것은 교과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사교육비와 청소년 자살률, 오이시디 꼴찌의 청소년 ‘행복지수’라는 통계로 요약되는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가?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가? 극단적인 사회양극화가 교육양극화로 연결되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게 되어 버린 현실을 누가 만들었는가?
지난 선거에서 곽 교육감이 당선된 것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라는 민의의 반영이었고, 그는 이런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교과부는 곽 교육감의 당선 앞에 반성해야 했고, 그의 분투에 협력해야 했다. 그런데 교과부는 발목을 잡거나 딴죽을 걸었다. 게다가 곽 교육감이 구속되자 차관이 나서 교육현장을 “바로잡아놓겠다”고 호언한다. 그 현장이 어떠한 모습이 될지 우려스럽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를 ‘바이러스’에 비유한 발언 앞에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교사의 교권, 학교의 질서는 물론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안에서 폭력과 차별을 허용하자는 주장은 용납될 수 없다. 최소한의 수면과 휴식을 박탈하는 제도, 학생의 개성을 금압하는 규제가 계속되어선 안 된다. 학생을 보호·관리·단속·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순간 학생은 유무형의 감옥에 갇히기 때문이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명제를 무효화하는 것은 이념과 정파를 떠난 과제이다. 그럼에도 교과부 차관은 학생인권 존중의 요구를 일부 문제학생의 것으로 치부하고, 나아가 없애 버려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일국의 차관이라면 이런 자극적인 발언이 아니라, 학생인권과 교권, 자유와 질서가 조화를 이루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식의 진중한 표현을 했어야 했다.
곽 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판결이 나올 때까지 반년은 걸릴 것이다. 그동안 교과부는 교육자치의 대원칙을 존중하며 교육행정을 수행해야 한다. 지난 선거에서 교육감 외에도 교육의원이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었다. 이들 교육의원 8명과 시의원 7명으로 구성되는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민의를 대변하는 기구이다. 교과부는 이 기구와 성실히 소통해야 한다.
지금은 교과부가 ‘이념공세’나 ‘언론플레이’를 할 때가 아니다. 수장 없는 서울시교육청을 또다시 흔드는 것은 서울시 교육 관계자는 물론 서울에 살고 있는 모든 학생과 학부모, 교육에 관심 있는 시민에게 혼란을 줄 뿐이다. 초·중·고교 혁신과 학생인권 보장은 시대적·국민적 과제이다. 교과부가 이를 외면하고 서울시교육청이 추구해온 ‘혁신교육’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교육계 내부의 비판은 물론, 다음 선거 이후 정치적·행정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임승빈 부교육감 권한대행이 민심에 충실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정도를 걷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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