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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낮은목소리] 정화조 청소는 계속되어야 한다 / 이국석

등록 2011-09-29 19:27

지난 22일 이국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이 사무실로 찾아온 정화조 청소 노동자와 상담하고 있다.
지난 22일 이국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이 사무실로 찾아온 정화조 청소 노동자와 상담하고 있다.
이국석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일반인들이 꺼리는 일을 하는데도
지자체가 용역 방식을 고집하는 건
수질오염 방지와 환경보전이라는
정화노동의 본질마저 흐리게 한다
정화조 청소 노동자(정화노동자)는 웃는다. 주민이 청소요금을 주면서 서로 손이 닿을까봐 돈을 손바닥에 떨어뜨렸다는 말을 하면서도 웃는다.

그들은 일하는 현장에서 자신이 직접 겪는 어려움과 타인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 어려움을 동시에 감내할 수밖에 없다. 공익을 위한 업무를 하면서도 만나는 상대와 장소에 따라서 자신의 직업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정화노동자들이 남들보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여 남들보다 일찍 퇴근하는 이유 또한 되도록 주민들에게 불편을 적게 주고자 하는 배려일 텐데 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청소행정은 주민들에게 청소 날짜를 고지하고 이를 강제하는 방법으로 청소 날짜를 어기면 과태료를 징수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다. 정화조 청소 대행업자는 주민과 청소 일정을 잡고 노동자들에게 당일의 분뇨수거량을 부과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청소 요청이 들어온 주택을 찾고 정화조를 찾아 분뇨를 수거한 뒤 주민에게 요금을 받아 회사에 납부하는 일은 모두 정화노동자들의 몫이다.

정화노동자들이 처한 근무환경은 적응이 되지 않은 일반인이라면 한 시간도 버티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고약한 냄새에 노출돼 있고 여기에 시각적 고충이 더해진다. 이것을 참지 못하면 천하장사라도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청소대행업자는 매출의 극대화를 위하여 과다한 분뇨수거 물량을 노동자에게 부과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이 물량을 남기는 일 없이 당일 처리하는 것을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다. 출근하여 업무지시를 받는 시간 외에는 회사에 돌아와 수입금을 납부할 때까지 오로지 파견된 분뇨수거 지역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러다 보니 점심식사도 고정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법으로 보장된 1시간을 쉴 수도 없다.

또 작업장소가 하루종일 야외와 마찬가지인 상태이다 보니 날씨에 따른 고충도 많다. 대형 정화조 시설엔 사다리를 타고 모터를 설치해야 하고 산동네처럼 차량의 진입이 어려운 주택에는 분뇨수거용 호스를 100~200m씩 깔아야 한다. 비가 올 땐 더욱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어려움은 타 업종 중에서도 더 힘든 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악취의 경우는 참기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주택가나 인도변에 정화청소 차량을 정차하고 작업을 하다 보면 주민들은 냄새를 피해 코를 막은 채 돌아서 간다. 노동자들 자신도 온종일 메탄가스와 함께 내뿜는 분뇨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고 숨조차 크게 들이쉴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유독가스는 당장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정화조 청소 작업 중 가스에 질식하여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정화조 청소업은 산업보건에 관한 규칙 187조에 따라 산소결핍 위험작업에 해당되며, 이에 따라 작업 전 산소농도 측정, 호흡 보호구 착용, 감시인 배치 등의 조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정화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안전 대책이나 안전 장구는 없다. 청소대행업자들 중에는 안전 장구를 회사 사무실에 비치하는 곳도 있지만 실제 현장에 투입하여 사용하지는 않는다.

정화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시설을 마련해놓은 청소대행업체도 많지 않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냄새와 땀에 전 상태에서 씻지도 못한 채 퇴근해야 하고 심지어 탈의실이 없어서 차량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청소대행업자가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이처럼 열악한 조건은 청소행정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만 개선이 가능하다. 청소행정을 바꾼다는 것은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정화노동자들의 처우 개선뿐만 아니라 수질오염 방지와 환경보전이라는 분뇨수거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 청소대행업자들의 부당요금 징수 및 이를 감추려는 갖가지 비위행위들을 종식하고 지금도 부당요금을 물어야 하는 주민들의 피해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부산지역일반노조의 자체 조사를 보면, 만약 표본조사 업체의 비위행위가 전반전으로 퍼져 있다고 가정할 경우 부산시민은 연간 60억~70억원의 부당요금을 징수당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지자체가 이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에서 직접 할 수 없다면 생활쓰레기 수거·운반대행처럼 정화조 청소 요금은 지자체가 직접 받으면서 청소대행업자에게는 실사를 통해 용역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청소대행업자는 자신의 이윤과 분뇨수거량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기준에 따른 정상적인 청소를 할 것이고 비위행위는 근절된다. 또한 직관로(분뇨를 분뇨처리장으로 바로 빠지게 하는 관) 공사로 인해 점차 줄어드는 일자리를 일정 부분 만회할 수도 있다. 현재의 고용형태는 업체의 이윤추구가 우선인 상황에서 최소화에 머무르고 있다. 예를 들면, 청소가 끝난 뒤 분뇨처리와 관련된 장치를 깨끗하게 청소해야 하는데도 현재는 인력이 없어 대충 끝내는 상황이다. 직접 고용을 하게 되면 직관로 공사 때문에 줄어드는 일자리를 분뇨처리 이후의 제반 업무에 투입할 수 있게 되고, 현재의 2인1조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본래의 사업 목적에도 부합하게 된다.

청소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요금을 내면서 청소하고 청소 시기가 늦으면 과태료를 부과받는 상황에서 대행업자의 비위행위를 종식하지 못해 본래의 사업 목적을 반감시킨다면 이는 과감히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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