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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유럽 해적당과 안철수 현상 / 이종오

등록 2011-09-30 19:37

이종오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이종오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2006년에 오랜 기간 안정적 정당정치를 구가하는 스웨덴에서 일단의 젊은이들이 해적깃발(검은 돛)을 들고 해적당(Pirate Party)이라는 신생 정당을 출범시켰다. 이 당은 3년 만인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7.13%를 얻어 원내에 진출하였다. 이들은 조직과 관료적 문화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며 정보사회의 민주화를 가장 중요히 여긴다. 이후 해적당 운동은 유럽 각지로 퍼져 현재 33개국에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독일 해적당은 지난 9월18일 치러진 수도 베를린시의회 선거에서 8.9%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독일 사회를 흥분과 놀라움으로 몰아넣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종래의 좌파 혹은 우파 정당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해적당의 출현은 1970년대 말 유럽 녹색당의 출현과 유사한 점이 있다. 크게 보아 이들 두 정당은 유럽의 68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기성 질서에 대한 파격적인 반문화·반권위주의 운동을 통한 해방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녹색당이 ‘생태적 지속가능성’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화두를 반영한 것이라면 해적당은 인터넷 혁명으로 인한 정보화 사회의 산물이다. 녹색당에 이은 해적당의 제도권 진입은 젊은 세대의 ‘유쾌한 반란’의 성공으로 향후 19세기 산업사회 이래의 계급적 진보-보수 정치구도를 해체시킬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정당정치가 미숙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당정치를 초토화시켰다는 점에서 유럽의 해적당이 출현한 배경, 즉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문화적 반란’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 없음’으로 나타나거나 선거에 불참하는 약 40% 안팎의 유권자, 다른 선택지가 없어 기성정당에 투표할 수밖에 없는 ‘억지로 투표자’가 폭발적으로 출구를 찾은 것이다. 여기서 개인 ‘안철수’의 실체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대신 이미 오래전에 노후화된 한국의 대의정치 시스템 자체가 문제로 등장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분단과 산업화, 군사권위주의 체제는 민주화와 분단 극복, 노동자 권익을 내세우는 정당을 출현시켰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이들 정당은 하나같이 권위주의적 정당이었으며 시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정당’이라는 한계를 지녔다. 이 정당들은 모두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불투명하며 당원이나 시민과의 소통이 막혀 있는 폐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정치는 디제이나 와이에스가 지배하던 보스정치에서 이제 여론조사 정치로 변화한 것이 고작이다.

유럽에서 해적당 같은 대안정당이 급성장하는 것은 한국에 비해 정당의 연륜이 깊고 대중의 참여와 소통이 열려 있음에도 기성 정당들이 더는 시대의 발전에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역동적이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한국 사회, 특히 젊은 누리꾼세대에게 기존의 한국 정치뿐 아니라 각종 심사, 심의, 온라인상의 실명제로 나타나는 문화·정보통제는 보폭을 맞추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들의 숨을 막을 지경이다. 예를 들어, 엄청난 규모의 국가재정을 쏟아붓고 원시림을 잘라야 하는 겨울올림픽 유치라는 ‘국가적 경사’를 맞이하여 여야가 다같이 환호하고 똑똑한 시민사회까지 잠잠한 한국 사회의 어디에 진보와 다양성이 있는가?

문화적 해적이 상징하는 것은 자유로움, 탈권위주의, 유쾌함 이런 것이다. 안철수 현상 역시 권위적이고 엄숙하고 불투명한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일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과 해적당 정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해적당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중심인물이나 리더는 잘 보이지 않고 ‘정상적인 시민’ 중의 하나로 등장한다. 이에 반해 안철수를 위시해 지금 거론되는 한국의 대안적 정치세력은 모두 개인 명망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른바 친박세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안철수 현상은 시대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적당 현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인물 중심 정치는 결국 옛 권력정치의 틀을 벗어날 수 없으며 시민주체 민주주의, 시민참여형 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야권통합 운동은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해적당과 안철수 현상이 이 운동에 시사하는 바는 새로운 시대와 세대에 부합하는 온전한 정치문화가 출현하지 못한다면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안철수 현상은 의미심중하며 기성의 모든 정당에 대한 심각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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