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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낮은목소리] 가정사가 담장 넘는 것을 두려워 말라 / 박성덕

등록 2011-10-13 19:47

박성덕  의사·<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저자
박성덕 의사·<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저자
박성덕 의사·<우리,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저자
불화는 행복을 위한 통과의례
노력하면 회복될 수 있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결혼 전 혼수를 준비한다. 그중 모든 남편과 아내가 반드시 챙겨가는 혼수가 하나 있다. 불화다. 불화는 혼수다! 부족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 가는 과정에서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성격 좋은 남녀가 결혼해도 죽일 듯이 싸운다. 성격이 비슷하든 다르든, 경제적으로 부유하든 가난하든, 학벌과도 상관없이 부부는 갈등을 겪게 되어 있다. 불화를 극복해야 비로소 부부는 행복해질 수 있다. 불화는 행복을 위한 통과의례다.

부부 갈등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정서 중심적 부부치료를 만든 수전 존슨 교수는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했다. 그래서 친밀한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에 결혼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식욕과 수면욕처럼 친밀감도 매일 채워져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은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길 원한다. 어릴 때는 부모를 통해서, 성인이 되면 부부관계를 통해서 이를 충족하려 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배우자에게 관심을 쏟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자신의 생활에 바쁘다. 그리고 친밀감의 욕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신의 욕구가 먼저 채워지길 원한다. 그래서 배우자의 욕구를 간과한다. 이렇게 친밀감이 좌절되면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좌절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영장류는 일차적으로 화를 낸다. 분노는 친밀감을 회복하기 위한 행동이다. 원숭이도 어미를 공격하고, 아이도 엄마를 향해서 화를 낸다.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 화를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침묵으로 간접적으로 화내는 사람도 있다. 화내는 방식에 따라서 부부는 세 가지 부정적인 대화방식에 갇힌다.

먼저 서로를 공격하는 ‘공격/공격형’이다. 이를 ‘나쁜 사람 찾기’라고도 한다. 서로의 단점만 들춰내고 가정은 전쟁터가 된다. 배우자가 공격해 오기를 기다렸다가 즉각적으로 반격한다. 두번째 유형은 한 사람이 공격하고 상대방은 도망가는 ‘공격/회피형’이다. 한 배우자가 공격하면 상대는 더욱 회피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공격의 강도는 높아진다. 결국 상대는 멀리 도망쳐 버린다. 세번째 유형은 서로 외면하는 ‘회피/회피형’이다. 한집에 살면서 정서적 별거 상태로 지낸다. 위의 사례가 이에 해당되며 이렇게 사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별일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일상의 일은 협조하고 사회적 모임에는 함께 참석하지만 집에 오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불화 고리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노력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불화의 고리는 점점 강화된다. 이를 갈등의 ‘자기 강화적 속성’이라 한다. 불화가 오래 지속되고 심한 부부일수록 자신은 옳고 배우자는 잘못이라는 사고가 생긴다. 그래서 배우자가 고치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부부치료 초기에 거의 모든 부부가 하는 말이 있다. “누가 옳은지 판단해 주세요!”, “제 아내(남편)가 변할 수 있겠습니까?” 배우자가 문제라는 불화 고리에 빠진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부부는 친밀감이 좌절되어 생긴 서운한 마음에 싸운다. 이제 부부는 일상생활이 싸움으로 번진다. 치약을 중간에 눌러 놓은 것이나 양말을 빨래통에 넣지 않은 것으로도 죽일 듯이 싸운다. 물론 양육관·성격·경제관의 차이도 더 크게 느낀다. 부부가 친밀감이 있으면 다른 성격조차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며, 양육관의 차이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고부갈등이 있어도 친밀감이 있으면 부부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내를 위로해서 부부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불화에서 벗어나려면 친밀감을 회복해야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에게 내가 소중한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답을 할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 배우자는 언제나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갈등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불화는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방치하고 살아가는 부부가 많다. 불화는 결혼 전에 각자 혼수로 챙겨온 것임을 잊지 말자. 그래서 내가 먼저 노력을 해야 한다. 가정사가 담장 밖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며 가족 비밀로 고통을 끌어안고 사는 부부가 많다. 아직 행복보다 체면이 더 중요한 한국 가정의 자화상이다. 안타깝다. 노력하면 모든 부부는 회복될 수 있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 무늬만 부부인 채 살지 말고 회복을 위해서 과감하게 상담이나 프로그램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부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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