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최근 기무사 요원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로서 마치 과거 독재주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몇몇 신문을 제외하고는 정부와 언론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덤덤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공권력 기관 최고책임자들의 상식을 벗어난 불의·불공정한 행태와 불법적 권력남용 횡포가 하도 많았기 때문일까?
정부의 비전과 정의가 국민과 역사 앞에 아무리 희박해 보이고 공권력의 주요 자리에 발탁된 사람들 거의가 도덕성에 흠집이 너무 많고 권력 정점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불신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군대는 그런 상태의 정부에 그대로 순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모습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이 확립된 나라에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정권을 탈취하거나 정권 연장을 위해 군대를 이용하는 등의 작폐가 있을 수 없다. 군을 정권의 하수역 삼지 못하도록 국민의식이 깨어 있고 군대문화가 성숙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군은 어떤 정치집단이 정권을 잡든 그 향배에 좌면우고하지 않고 의연당당 흔들림 없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 정진함으로써 진정으로 강한 조직으로 육성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과도기에 있다 할 수 있다.
혹여나 내년의 양대 선거를 앞두고 움켜쥔 기득권을 영속 유지하려는 탐욕에만 눈먼 단순무지한 거대 검은 세력이 역사의 대흐름을 역전시키려 발버둥쳐, 기무사의 공작능력을 활용해 북풍 때처럼 친북좌파 척결이라는 공포적인 속임수의 엉뚱한 불장난을 조작·공표하여 판을 깨는 기상천외의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조짐의 일환이 불거진 것은 아닌지? 뚱딴지같지만 개연성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상상력의 의심을 금할 수 없다.
기무사가 몇몇 대원의 공명심에서 독단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감행할 만큼 그렇게 기율 없고 허술한 기관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가 해온 막무가내식의 미숙하고 용렬한 통수권 운영 과정으로 미루어볼 때 결코 국방부와 기무사만을 따져 물어 질책함으로써 끝낼 수 있는 성격의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국민의 이름으로,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은 군의 정치적 중립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졌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완전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휘권 위에 음성적으로 군림해온 파행적 행태가 정상화됨으로써 군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했다. 특히 기무사 요원들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대폭 심화하여 의식이나 능력 면에서 출중한 최정예요원으로 육성되었다. 이제 특권에 기대어 각종 부조리에 개입하던 과거의 악폐는 말끔히 사라졌다.
그들은 가히 군대 내의 ‘20~40세대’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보수집·분석·평가 및 응용 능력이 뛰어난 최우수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불가항력적이었을지도 모를 금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친일독재 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사기쳐 정권을 거머쥐었을 때와 같은 어떤 달콤한 꼼수의 유혹에도 끄떡없이 올바른 역사의식에 기초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일국의 국군통수권이 확고한 통수 이념과 철학 그리고 경험적 혜안이 결여되어 반역사적 집단에 얹혀 끌려다니는 혼돈의 불행한 사태에 처하더라도 우리 군은 흔들림 없이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중심에 서서 과거 선배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재범치 않고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사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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