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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 칼럼] 법관 발언과 법원의 소통 능력

등록 2011-11-28 19:22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한 부장판사가 페이스북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날치기 처리에 대한 소감을 올렸다가 보수층의 집중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첫 보도를 한 보수 신문은 대법원장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후속기사를 1면 머리로 실어 계속 쟁점화를 의도했다. 대법원이 이 사안을 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 다루기로 한 것이 대법원장의 의중을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해당 부장판사는 ‘사적 공간’에서 생각을 말한 것으로, 잘못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특성상 계속 퍼져갈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니 단순히 사적 공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법관이라고 해도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안에 대해 개인 의견을 일절 말할 수 없다고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

대법원장은 취임을 전후해서 ‘튀는 판결’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기존의 판례를 무시하고 세간의 분위기에 편승해 시선을 끌려고 내리는 판결이라는 의미로 언급하는 것 같다. 국민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판결이 나와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유지될 수 있다는 지론도 폈다. 나름 법원의 안정성을 걱정해서 나온 것으로 해석되지만, 튀는 판결이 없는 것이 과연 좋은 사회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안정성이라는 것이 속세와 격리된 특수직역의 문제인지 사회 전체와 관련되는 것인지도 논의돼야 한다. 사회의 모순, 갈등에 따른 긴장이 적절한 통로로 해소되지 않고 누적되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이런 기능을 게을리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사법부 파동이라는 용어로 기억하는 일련의 사태들은 결국 법원 내부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사법부의 안정성을 따진다면 일본만 한 데가 있을까 싶다. 나는 일본의 사법부에 대해 유감이 많다. 한 20년 전부터 전후보상 재판의 결과를 쭉 봐왔기 때문이다. 식민통치 희생자나 유족들이 겪은 고통을 들어보면 글로 옮길 수도 없는 사연들이 적지 않다. 군대위안부 할머니, 징용 징병으로 끌려갔던 사람들,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사할린이나 시베리아에 장기간 억류됐던 피해자들이 아무리 소송을 제기해도 튀는 판결은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하급심에서 피해자의 일부 승소 판결이 있을 때도 있지만 상급 법원에 올라가면 결국은 기존의 판례로 되돌아간다.

일본의 법관들이 피해자들의 절절한 고통을 듣는 신체적 능력이 심각하게 마비됐거나 퇴화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래도 오랜 기간 철통같은 안정성을 유지해온 탓이 큰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 때 일본의 경찰 검찰은 물론이고 사법부도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단속하는 국가적 억압기구로 작용했다. 특히 정치범이나 노동운동가들을 다루는 특별고등경찰(특고)이나 사상검사는 악명이 자자했다. 일제가 패망한 뒤 특고나 사상검사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점령군사령부의 지령에 따라 대부분 공직추방됐다. 나중에 냉전의 격화와 함께 점령정책의 기조가 바뀌면서 상당수가 다른 유사기관에 복직하기는 했지만 일단 청산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판사들은 아예 공직추방조처에서 제외됐다. 일본 사법부는 일제 때의 인적 구성, 기풍, 정서가 온존됐다고 말해도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심지어는 사상검사로 맹활약했던 사람이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로 임용돼 판결을 내렸다. 그런 풍토에서 일제 때 적용됐던 숱한 악법들의 법적 정당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일본 사법부에 비하면 우리 사법부가 훨씬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장기독재체제 아래서 사법살인에 동조하는 등의 어두운 역사가 있기는 했지만, 근래에 들어 그것을 바로잡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조봉암씨 사건을 비롯해 간첩으로 몰렸던 납북어부나 재일동포 유학생 사건의 재심이 받아들여져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피해 당사자나 가족들의 생활이 철저하게 망가진 상황에서 늦기는 했지만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얼마나 유지될지 불안하다. 대법관 후보의 제청이나 임명 권한을 가진 이들의 평소 발언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향후 대법원의 구성 변경에 대한 시민사회의 경각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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