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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낮은 목소리] “청년의 꿈, 열정? 그런 소리만 들어도 화가 납니다”

등록 2011-12-08 19:38수정 2011-12-09 13:22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돈 때문에 대학 떠나는 학생들
 원로가수 최희준이 지금 노래를 불렀다면, 그 제목은 ‘하숙생’이 아닌 ‘휴학생’일지도 모른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11년 현재 대한민국 대학생의 수는 373만명이다. 이 가운데 휴학생 수는 111만명으로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대학생 세 명 가운데 한 명꼴로 휴학생이란 소리다. 왜 휴학을 할까. 최근 한 취업 포털의 조사를 보면 응답자 1793명의 55%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과거, 병역이나 외국 연수를 위해 휴학을 했다면 이제는 돈 때문에 하는 것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한 ‘알바’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요즘 등록금은 잠깐씩 하는 알바로 ‘감당’이 안 된다는 데 있다. 여기에 생활고까지 겹치면 대학은 ‘내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 ‘장기 휴학생’들이 속출하는 이유다. 그들은 말한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일해도 복학을 위한 등록금은커녕 생활비도 점점 빠듯해지는 현실에 좌절의 무게만 늘어갈 뿐이다.

 이번 낮은 목소리는 ‘돈’ 때문에 학교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남녀 대학생 두 명을 만났다. 84년생 남학생은 원래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웠고, 88년생 여학생은 서울 강남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내몰린 경우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휴학 7년차 한민곤씨 

등록금 못내 미등록 제적
군대 마치니 신용불량 딱지
자기 또래 대기업 사원 보며
‘내가 잘못 살았나’ 자괴감

어머니는 걱정 말라고 했다. 돈을 구해 온다고.

 나는 2003년 수도권 한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입학금을 포함해 300만원의 등록금을 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등록금을 대려고 어머니는 내 명의를 빌려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부모님은 일찍 이혼했다. 누나는 아버지를 따라갔고, 나는 어머니와 살았다. 아버지 쪽하고는 왕래가 끊긴 지 오래였다. 입학하고 얼마 안 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를 키우기 위해 어머니는 빚을 많이 졌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빚은 더 늘어났다. 1학년은 대출금으로 겨우 다녔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캐피탈’에서 대출을 받은 기억이 난다. 500만원을 대출받았고, 한달에 몇만원 정도의 이자를 갚아나갔다. 그렇게 1년을 버티니 다시 돈이 바닥이 났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낼 돈이 없었다. 학교에 사정을 해 등록금을 곧 구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돈을 구하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시간은 흘러 중간고사까지 치렀다. 장학금이라도 받아볼까 해서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등록을 하지 못해 제적 처분을 한다는 전화였다.

 2004년,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쫓겨났다. 분노가 치밀었다. 누가 돈 안 낸다고 했나.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을 뿐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군대에 가는 것뿐이었다.

 제대를 하니 나를 기다리는 건 ‘신용불량자’라는 딱지였다. 한달에 고작 몇만원의 이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어머니는 허덕이고 있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몰래 이사를 다니며 전입신고를 안 해 주민등록조차 말소된 상태였다. 당장 내가 먹고살 돈도 없었다. 일이란 일은 모두 다 찾아서 했다. 편의점, 찜질방, 공장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노점상도 해봤다. 요새는 노점상도 인터넷으로 모집한다. ‘알바’ 사이트를 보고 찾아갔는데 처음 무턱대고 시작했다가 노점협회 사람들이 몰려나와 정말로 얻어맞을 뻔했다.


 보통 하루 12시간은 일한 거 같다. 주말도 없었다. 아침엔 편의점, 저녁엔 찜질방, 주말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체육관, 정말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해도 한달에 100만원을 좀 넘게 벌었다.

 한번은 개들이 먹는 간식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상류층 판매를 목적으로 한 고급 간식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재료는 연어, 소간 등이었다. 나는 라면 먹고 나와서 일하는데 개들은 나보다 더 좋은 걸 먹는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했다.

 몇년을 악착같이 벌어 2009년 겨우 신용불량자 딱지를 뗐다. 다행히도 신용불량자 회생 프로그램으로 대출금의 일부분을 탕감받았다.

 복학을 하고 싶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벌어서 집세 내고 생활비 쓰면 남는 게 없었다. 3년 전쯤에 학교에 전화를 했더니, 복학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학비는 많이 올라 있었다. 등록금만 300만원이 넘었다. 더군다나 재입학이기 때문에 입학금을 또 내야 한다고 했다. 입학금만 100만원에 가까웠다. 그 돈이면 한달 생활비다. 엄두가 안 났다. 그냥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는 지금 공식적으로는 나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그것 때문에 자격요건을 갖춰 저소득층 임대주택을 지원받아 살고 있다. 처음엔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런데 가끔 나오는 당국 실사와 주변 눈초리가 무서워 집을 나왔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 근처 월세 30만원짜리 옥탑방이 내 집이다.

 요새는 한달에 109만원을 받으며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정규직은 아니고 인턴 비슷한 거다. 길거리에서 후원자를 모집하는 일이다. 몇개씩 알바를 전전하던 시기보다는 좀 나아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변하지 않았다. 월세 주고 생활비 쓰면 남는 게 없다. 복학은 이제 포기했다. 한번은 사람도 안 만나고 먹는 것도 줄여가면서 썼더니 10만원이 남은 적이 있다. 그걸 저축하려다가 문득 ‘이 돈 저축해서 내가 뭘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집은커녕, 학비도 못 마련한다. 그냥 쓰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도 힘들어서, 동사무소를 찾아가 “나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제도는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없다”였다.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고 비싼 음식을 먹는 내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내가 잘못 살았나’라고 자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얼마나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또 눈을 낮춰야 하는 걸까. 공정한 경쟁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넣고 ‘눈이 높아서’, ‘경쟁력이 떨어져서’란 충고를 하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꿈, 열정 이 따위 단어들만 들으면 화부터 치밀어 오른다. 얼마나,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강남 키드의 눈물’ 임은정씨

대학 입학하자마자 집안 부도
대출·알바에 허덕이는 삶 연속
친구들 멀리하고 ‘스스로 왕따’
무용가 꿈은 접고, 로또가 희망

무용가의 꿈은 접었어요. 로또 당첨이 내 꿈이 됐어요.

 저는 원래 ‘강남 키드’였어요. 중고등학교를 다 서울 강남에서 나왔고요, 사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사는 가정이었습니다. 넉넉한 가정 형편 덕분에 꾸준하게 무용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2007년 제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갑자기 먹고사는 게 힘들어질 정도로 가세가 기울었어요. 그때 집도 강북으로 이사를 했어요. 무용과는 학비가 다른 과보다 비싸요. 입학할 때 입학금 포함해서 580만원을 내고 들어왔어요. 입학하자마자 학자금 대출을 받았죠. 총 800만원을 받았는데 한달에 1만6000원씩 이자를 내요. 7년간 이자만 갚고 뒤에 원금을 갚는 식이에요. 그런데 무용과는 여러 가지 부대비용이 들어가요. 공연도 많고, 각종 행사 때 교수님들 챙겨드리는 것도 있고요. 언제 썼는지도 모르게 금방 돈이 없어지더라고요.

 1학기만 마치고 바로 휴학을 했어요. 본격적으로 ‘알바 전선’에 뛰어들었죠. 보통 커피전문점이나, 주점 같은 데서 알바를 많이 했어요. 학생들이 이쪽 알바를 많이 찾는 이유가 있어요. 돈을 많이 주지는 않지만 시간이 고정적이어서 공부와 병행하기가 수월하거든요. 낮에는 커피전문점, 저녁에는 주점, 그리고 일주일에 두세번 무용학원 알바를 뛰었어요. 커피전문점 같은 경우 시간당 4300~4500원 정도 받아요. 전 운이 좋아서 5000원 정도를 받긴 했는데 굉장히 드문 경우예요. 좋은 알바의 경우 정보 얻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친한 애들끼리도 절대 공유를 안 해요. 자기만 알고 있어요. 어디가 얼마를 주는지, 일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발품을 팔고 다녀서 겪는 수밖에 없어요.

 알바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어요. 특히 주점에서 일할 때 서빙하고 나서 뒤통수에 대고 하는 성희롱 비슷한 말들은 너무 싫었어요. 병원 근처에 있는 술집이어서 의사들이 많이 왔거든요. 한번은 술 내려놓고 돌아서는데 “꼬셔봐, 꼬셔봐”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쉽게 보이나’ 하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었어요. 그렇게 한 학기를 휴학하면서 정신없이 벌었어요. 겨우 학비를 마련하고 복학을 하긴 했는데 상황은 나이지지 않았어요.

 학교 다니면서 학원 알바는 계속했는데 한달에 20만~30만원 받는 알바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또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친구들하고도 멀어졌어요. 학교에서 애들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면 하루에 1만~2만원이 금방 없어져요. 저한테는 피 같은 돈인데 말이죠. 결국 스스로 ‘왕따’를 시켰어요. 학교 다니면서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사라졌어요. 또래 여학생들의 명품백 같은 거 부럽진 않았냐고요? 그런 질문 받는 게 너무 싫어요. 가방 같은 거 신경쓸 여유가 없어요. 그런 것들이 싫어서 더 친구들하고 멀어진 거 같기도 해요. 친구들이야 많이들 갖고 다니니….

 그렇게 학교를 다니다가 또 휴학을 했어요. 원래 이쪽이 대학원을 많이 가거든요. 이제는 대학원에서 쓸 학비까지 당겨서 대출받아 대학원 진학은 불가능해졌어요. 사실 무용가의 꿈은 접은 지 오래예요.

 말하기 부끄럽지만 제가 무용에 소질이 있었어요. 외부 오디션도 합격해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복학해서 일단 취직하는 게 소원이에요. 대학엔 별로 미련이 없어요. 알아보니 스튜어디스가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면 지원이 가능하더라고요. 지금은 그걸 알아보고 있어요. 스튜어디스에 지원이라도 하려면 복학을 해야 하는데, 눈앞이 깜깜해요. 500만원 등록금은 어디서 마련하죠?

 언니는 일찍 취업을 해서 자기 밥벌이는 해요. 그런데 동생이 문제예요. 재수하고 있는데 이번에 대학 입학을 포기했어요. 본인이 아직 대학 갈 준비가 안 됐다고는 했지만, 학비 문제가 사실 컸죠. 마음이 아파요.

 요즘은 낮에 공연장에서 알바하고 저녁엔 학원 알바를 해요. 남는 시간엔 복학준비도 할 겸, 아니 사실 취업준비를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요. 처음엔 편하게 학교 다니고 공연하는 친구들 보며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어요. 그런데 또 살펴보면 돈 때문에 무용 관두는 친구들이 엄청 많거든요. 그거 보면서 위로 삼아요. 이젠 익숙해지기도 한 거 같고요. 다들 힘들잖아요.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학교 돌아갈 생각만 하면 짜증이 나요. 돌아가면 뭘 할지도 모르겠고, 단순히 졸업만 하려고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무용가 꿈도 접었는데, 수업은 어떻게 들을지 암담해요.

 학비요? 돈 없으면 또 대출받아야죠. 어쩌겠어요. 빨리 취업해서 갚아야죠. 알바도 더 많이 하고요. 제가 너무 무모하리만큼 성격이 좋아서 그래도 버티는 거 같아요.

 요즘은 자투리 돈으로 사는 ‘로또’가 희망이에요. 생각날 때마다 사요. 가끔 당첨되는 상상을 해요. 되기만 하면, 되기만 하면….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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