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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곽노현 교육감은 무죄다 / 김승환

등록 2011-12-28 19:45

김승환 전북교육감·전 한국헌법학회장
김승환 전북교육감·전 한국헌법학회장
사후매수죄 조항을 체계적으로
해석해 보면, 이 조항 역시
‘사전합의에 유사한 의사의 연관’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나는 헌법학자로서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이 글을 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사건’ 재판이 처음 예상과 달리 선고가 늦어지고 있다. 그만큼 재판부도 유·무죄의 판단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은 사건 초기, 공직선거법 232조 1항 1호(사전매수죄)에 집중했다. 사전매수죄는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에게 금전 등을 제공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의 금전 제공’ 등이 있었는지 여부는 후보사퇴를 한 자와 사퇴를 받아낸 자 사이의 합의가 있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경우의 합의는 양 당사자의 직접적 합의일 수도 있고, 당사자의 위임이나 지시를 받은 사람들 사이의 합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은 사전매수죄가 규정하고 있는 범죄구성요건의 결정적 부분인 곽노현 교육감과 박명기 교수 사이의 합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선 것이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사후매수죄)이다.

사후매수죄는 후보자를 사퇴한 것에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였던 자나 후보자가 되고자 했던 자에게 금전 등을 제공하면 성립한다. 사실 사후매수죄는 외국의 입법례도 찾기 힘들다. 또한 이 조항에 의해서 처벌받은 사례도 없다. 그 이유는 입법자가 현실적으로 성립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를 사후매수죄로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조항을 체계적으로 해석해 보면, 사후매수죄 조항 역시 ‘사전합의 또는 사전합의에 유사한 의사의 연관’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생각해 보라. 사전합의가 없었는데도, 또는 사전에 양 당사자 사이의 의사의 교환이 전혀 없었는데도, 선거 후에 당선된 자가 후보를 사퇴한 자에게 금전 등의 이익을 제공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는가? 형사법은 있을 수 있는 경우를 예상하고 그러한 경우가 발생하면 ‘법적 비난’을 하고 그 책임을 묻는다.

양 당사자 사이에 아무런 내적 의사 연관도 없었는데도 선거가 끝난 후 금전 등의 이익이 오고간다는 것은 사회상규에 비추어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러한 경우를 상정하고 곽노현 교육감을 기소한 검찰의 주장은 법해석을 빙자한 빈약한 논리구성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곽노현 교육감이 강경선 교수를 통해서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넨 것은 사전합의에 따른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이고, 어떠한 대가성도 없다.

이 사건에서 건네진 돈이 ‘대가성 있는’ 금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첫째, 돈을 받은 박명기 교수가 ‘곽노현 교육감이 건네는 돈이라는 인식’을 했어야 한다. 둘째, 곽노현 교육감 자신이 강경선 교수를 통해서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전달할 때,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로 주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박명기 교수는 법정진술을 통해 곽노현 교육감에게서 나온 돈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돈을 받은 사람이 누구에게서 나온 돈인지도 모르는데 그 돈의 성격에 ‘대가성’이라는 범죄구성 표지를 붙일 수 있는가? 무엇보다 선거 전에 ‘대가성’ 있는 금전 제공의 사전합의를 철저하게 거부했던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가 끝난 후에 ‘대가성’ 있는 돈을 건넸다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뿐이다.

오히려 곽노현 교육감의 선거 후 금전제공 행위는 곽노현 교육감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선거캠프 관계자끼리의 금전제공 구두합의에 대하여 그 어떤 위임도 추인도 하지 않았지만, 강경선 교수를 통해 알게 된 박명기 교수의 경제적·정신적 긴박상태에 대한 긴급한 부조의 측면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결국 곽노현 교육감과 박명기 교수 사이에 전달된 돈과 관련하여, 후보자 사퇴에 대한 대가로 금전 등을 제공하기로 한 ‘사전합의’ 또는 ‘사전합의에 유사한 의사의 연관’이 없었다면 곽노현 교육감은 무죄다. 곽노현 교육감의 행위에는 공직선거법상의 후보매수죄에 따른 법적 비난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전 한국헌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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