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권 논설위원
2011년의 끝자락,
올 한해 당신의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였나요
올 한해 당신의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였나요
세밑에 고민이 생겼다. 고민은 대개 힘들고 부담스럽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즐겁고 흥미롭다. 생각할수록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이 번진다.
이번주 발매된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송년호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연말에 언론매체들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을 독자들이 뽑아달라는 거다. 요즘 유행하는 ‘슈퍼스타케이’식 선정이다. 대신 후보군으로 ‘톱4’를 제시했다. 바로 김진숙, 안철수, 박원순, 외부세력이다.
이건 정말 난형난제다. 누구 하나 올해의 인물로 부족함이 없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광야를 불사른 ‘한 알의 불씨’였다. 309일을 높이 35m의 아찔한 부산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서 홀로 버티며 부당한 노동자 정리해고 철회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쳤고, 결국 이겼다. 한 개인의 헌신이 수십만, 수백만을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사람과 노동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웠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어떤가. 시민운동가에서 ‘시민후보’로 시장 선거에 도전한 그는 강고한 정당정치의 벽을 뛰어넘어 상식과 원칙으로 승리를 일궈냈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시민의 분노와 지혜, 행동, 대안으로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가 시민이 주인인 서울을 어떻게 그려갈지 늘 설레고 궁금하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역시 토를 달기 어려운 주인공이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온몸을 할퀴인 청춘들에게 그는 공감과 위로 그 자체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통 큰 기부로 신선한 감동도 안겨줬다. 기존 정치의 위기 속에서 변화·개혁의 갈망과 결합해 ‘안철수 현상’을 낳았고, 새로운 정치 리더십으로 존재감을 확장중이다.
마지막으로 외부세력. 여태껏 불온함과 동의어였던 이 얼굴없는 존재들은 올 한해 변화의 큰 동력이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 판을 벌였다.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제주 강정마을에서, 서울 홍익대에서, 수원 쌍용자동차에서 연대와 이타심을 실천했다. ‘사람의 혁명’으로 세상을 흔들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시위대’(Protester)의 한국판이다. 어쩐지 타인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실은 너와 나, 우리의 다른 이름이다.
올해의 인물을 떠올리는 건 나의 한해를 되새김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올해의 인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여전히 조금은 거창한 ‘올해의 인물’ 말고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사람’을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이렇게 생각하니 많은 이들이 기억난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 구세군을 방문해 불우한 이웃을 도와달라며 2억원을 선뜻 내놓은 90대 노부부.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기부금의 규모보다 더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건 두 사람의 태도다. “오늘 밤은 다리 쭉 펴고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오히려 홀가분한 노부부의 모습은 세속적인 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평화비)에 목도리와 담요, 털모자 등을 씌운 이름 모를 이들도 노부부와 닮은꼴일 게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존재들이다.
여느 해보다 팍팍하고 힘들었지만 어느샌가 2011년의 끝자락에 왔다.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묻고 기대해 본다. 올 한해 내게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였을까? 내년 이맘때쯤 나는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추신: <한겨레21> 올해의 인물 선정에는 새해 1월5일까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참여할 수 있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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