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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 염호기

등록 2012-01-02 19:42

염호기 인제대 의대 교수
염호기 인제대 의대 교수
학교·병원·시설 등은 언제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불안전지대…
문제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 자체보다
보고가 안 돼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것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매일같이 신문에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인터넷에서 학교폭력을 저지른 아이들을 처벌하라는 여론이 비등한다. 또 이런 폭력 아이들은 그저 평범한 학생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사건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하다.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는가? 일선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는 안전하다고 착각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지내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학교폭력은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건 일어나고 있고, 이렇게 문제가 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제발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보라. 정말 학교가 안전한 곳인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학교는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곳을, 학교를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만들지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의료기관에서도 소소한 안전사고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일어난다. 사고가 없는 의료기관은 사기다. 거짓말이다. 숨기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왜 실수가 없겠는가? 사람은 실수하는 동물이다(To err is human).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나라 학교에 폭력이나 사고가 없다는 것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없다는 것과 같다. 소소한 사건, 일어날 뻔한 사건, 일어났지만 문제되지 않은 사건, 실제 일어나 작거나 큰 문제가 생긴 사건 등등 수없이 많다.

이런 모든 사건이 보고되어야 한다. 제3자와 당사자로부터 완벽한 근본원인 분석을 하고 재발 방지 대책과 개선 절차를 통하여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체계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여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토론을 하여야 한다. 이런 과정이 모두 우리의 학교를 안전하게 지키는 유일한 방안이다. 사건이 알려지거나 보고가 될 경우 잘잘못을 따져 처벌을 하고 야단을 친다면, 피해자나 가해자, 학교 선생님, 교장 선생님 모두 감추기만 할 것이다. 피해자는 보복이 두렵고, 가해자는 처벌이 두렵고, 선생님들은 귀찮고 평정에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 모두가 쉬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고 절차를 만들고 또 개선하는 과정만이 안전을 담보하게 된다.

얼마 전 도가니 사건이 있고 난 뒤 전국적으로 장애인 시설에 대한 감사가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된 일부 기관을 폐쇄시켰다고 한다. 행정편의주의의 발상이며 근본 원인에 대한 고려 없는 안이한 처방이다. 상처가 곪아 터졌는데 반창고만 붙이고, 안 보이니까 좋아졌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도 이런 처방으로 장애인 시설의 근본적인 문제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학교나 병원이나 요양시설 등은 모두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는 곳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체계와 절차를 마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자발적인 보고가 가장 우선이다. 보고된 사건만이 대책을 세울 수가 있다.

학교·병원·시설의 종사자·관리자·책임자들은 문책이 두려워 보고하기를 꺼린다. 일반 사람들은 사건 자체만 보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라고 하며,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를 쓴다. 그러면 사건은 보고되지 않고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기관들은 언제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불안전지대임을 명심하는 것이다. 사고가 일어난 것 자체보다,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재발을 막는 대책과 체계, 절차를 잘 수립하고 있는지를 감시해야 한다.


학교·시설·병원에 사고 보고가 없다면 이는 정말 안전한 곳이 아니다. 사고 보고가 잘 되어 있고 체계가 있는 곳이 정말 안전한 곳이다. 그런 체계가 있는 기관은 안전해질 것이며 우리는 안심하고 우리의 자녀를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염호기 인제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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