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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박근혜는 ‘쇄신’ 안 해도 되나 / 김종구

등록 2012-01-12 18:49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가는 곳마다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나부터 변하겠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쇄신이라는 아름다운 말에는 피비린내가 섞여 있다. 그 이데올로기적 형식은 국민과의 소통이니 정강정책의 변화니 하는 거룩한 것들이지만 그 실존적 내용은 냉혹한 권력투쟁이다. 밀어내려는 자와 밀려나지 않으려는 자의 처절한 싸움이다. 이 껍데기와 실질을 질서있게 포장해 대중에게 제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쇄신책의 본질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쇄신의 링 위에서 싸우는 검투사들의 승패는 확연해졌다. 친이계는 이제 혼수상태로 들것에 실려 나가느냐, 아니면 절뚝거리며 경기장을 떠나느냐의 선택에 몰리고 있다. 한때 비상대책위원들의 뒤꿈치를 노리며 저항하려던 투지마저 꺾인 눈치다. 돈봉투 폭로의 음모론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현실이 그러하다.

한나라당이 친이계를 찍어내고 강호의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면 쇄신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진행될 것인가. 사실 친이계의 퇴장과 물갈이는 역사적 필연이다. 하지만 그것은 쇄신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역대 총선에서도 꾸준히 물갈이는 이뤄졌다. 18대 총선만 해도 한나라당(82명)과 친박연대(8명)를 합치면 여권에서 90명이 새로 금배지를 달았다. 그렇지만 자신을 발탁해준 보스에 대한 신참 의원들의 충성도는 오히려 기성 의원들을 능가한다. 그것이 은혜를 아는 인간의 도리이며 정치적 생존술이다. 인걸은 바뀌어도 산천은 의구한 것이 물갈이의 역설이다.

친박들은 친이보다 정의롭고 유연하며 서민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회의적이다. 민주당 비공개 최고회의 도청 의혹 사건을 일으킨 한선교 의원은 친박계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룰 ‘국민검증위원회’를 설치한다는 소식도 없고, 박 의원이 한 의원을 질책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는다. 비상대책위원 선발 과정에서 보인 박 의원의 용인술 역시 장차의 물갈이 방향을 시사한다. “전철연 미친놈들”이라는 어느 비대위원의 언행에서는 이명박 정부 내내 세상을 휘저은 법치 만능주의의 찬바람만 일 뿐 없는 자에 대한 연민은 찾아볼 수 없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모두 ‘당이 뼛속까지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이 투영된 발언일 뿐이다. ‘내가 그동안 틀렸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친박이든 친이든 마찬가지다. 그 정점에는 박근혜 의원이 있다. 정치가 변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나부터 변하겠다”는 말을 입밖에 내본 적이 없다. 박 의원은 변할 필요가 없이 본디 완벽한 인물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동안 충분히 변해서 더는 변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불똥이 2007년 대통령 선거 경선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박 의원은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당연히 예상된 반응이다. 하지만 박 의원을 포함해 오랫동안 정치를 해온 사람들 중 금권정치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게 정치 현실이다. 그럼에도 박 의원이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으면서 이 문제에 접근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박 의원이 이끄는 ‘쇄신 한나라당’이 이전 ‘구태 한나라당’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 역시 배반당했다. 박 의원이 회의중 ‘언성을 높였다’든가 ‘음성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는 따위의 전언에 한나라당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그 의미를 해석하고 전망하느라 바쁘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지엄한 말씀’의 위력은 변함없다.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 소위 구성안 날치기 처리,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에 대한 인준 거부 몽니가 쇄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쇄신은 아직 신기루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박근혜의 쇄신 없는 한나라당의 쇄신책이 조만간 뚜껑을 열 것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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