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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저축은행·씨앤케이 사태와 공인회계사 / 라현주

등록 2012-02-08 19:36수정 2012-02-08 20:28

라현주 한울회계법인 부대표
라현주 한울회계법인 부대표
자본주의 파수꾼 역할을 강화해분
식회계·주가조작 없는 자본시장을
만들어가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회계감사의 불편한 진실이란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의료, 법률 등 전문가 서비스는 고객이 필요에 의해 전문가를 찾고 대가를 치르는 게 일반적이나, 회계감사는 정보이용자인 고객이 아니라 정보를 작성하는 피감사기업이 법에 의해 비자발적인 계약을 체결해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종종 기업이 자유수임제라는 우월적인 지위 아래 경쟁을 통해 감사인을 선정하기 때문에, 감사시간 부족에 따른 부실 감사가 이뤄지고 잘못된 감사의견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회계감사는 애초 배정제에서 1980년대 초 경제단체의 주장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 아래 자유수임제를 채택하였고,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최근 여야를 불문하고 제기되는, 자본주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논의(출자총액 제한제 부활, 진보적인 세제 등)와 저축은행 사태, 씨앤케이(CNK) 주가조작 등을 볼 때, 현행 회계감사 제도는 한계에 봉착한 느낌이며 보완 수준의 개선이 아니라 큰 변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공개시장 확대와 이에 따른 폐단에 대한 자본주의 파수꾼으로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부실 감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자유수임제는 우선 금융기관 및 공개기업에 대해 전면적인 배정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융기관 및 공개기업의 회계감사 역할에 대한 사회의 기대 수준을 자유수임제로는 충족시킬 수 없다고 본다. 회계법인 등록제와 더불어 배정제의 도입을 통해 감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고 분식회계 관행을 근절하여, 제2의 저축은행 사태를 방지하고 주가조작 없는 자본시장을 만들어가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자유수임제 도입은 우리 기업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었다. 선진국의 경우, 기업 지배구조상 주주와 경영진이 분리되어 있어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외부감사인의 역할을 통해 주주는 경영진이 작성한 재무제표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을 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업 환경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기업 환경은 대주주와 경영진,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등이 형식적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 선진국의 기업 지배구조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저한 환경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유수임제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만을 주장하는 과거 경제단체들의 요구는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수술이 필요한 현시점에서는 매우 합리적이지 못한 주장이 되어버렸다. 지속되는 어려운 국내외 기업 환경에서 매년 저축은행 및 공개기업의 대형 분식사태 등이 초래되고 이에 대한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보인다.

논리적으로 볼 때, 회계감사의 보수는 회계감사 보고서를 이용하는 정보이용자(주식투자자 등)가 부담해야 한다. 정보이용자가 아닌 정보생성자인 피감사기업이 100% 회계감사 보수를 부담하는 현실과 자유수임제 아래서 감사 보수는 회계법인간 과당 경쟁을 통해 낮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부실 감사를 초래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을 통해 “주식투자자 돈 떼간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금융투자협회 등을 통해 정보이용자로부터 합리적인 정보이용료를 징수하여 피감사기업이 아닌 정보이용자가 감사보수를 상당 부분 부담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재무제표의 작성 책임은 회사 경영진에게 있으며 감사인의 책임은 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다’,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는 회사의 부정과 비리 적발에 대해 수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당연시된 주장들은 이제 공인으로서의 회계감사인이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될 수 없다. 자본주의 파수꾼인 회계감사인에게 ‘공인’이라는 족쇄 타이틀을 왜 사회가 부여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라현주 한울회계법인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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