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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함경도 아이들에게 남해의 미역을 / 정병호

등록 2012-02-20 19:18수정 2012-02-21 15:41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탈북 청소년 20명 중 두세명꼴로
심한 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다
벌써 10년째 탈북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있는 교사가 한숨을 쉬며 하소연을 했다. “요즘 도착하는 아이들 중에는 아주 심한 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오래전 말씀하셨던 유아기 요오드 결핍 후유증 아닐까요?” “아! 드디어 그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은 성장발육 문제가 있어도 인지능력은 괜찮아서 잘 알아듣고 배웠는데, 2~3년 전부터는 스무명 중 두세명꼴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94년생 18살 청년이 1㎞가 1000m면 2㎞는 몇m인지 그 연관성을 전혀 모르고 그저 멍하게 쳐다보기만 한다고 한다. 단순히 학습경험이 부족했던 이전의 꽃제비 출신들과는 아주 다른 답답함과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은 대개 키도 작고 쉽게 피곤해하며 몸도 아주 빈약하다. 이들이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할 힘겨운 인생길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실태에 대한 2002년 유럽연합, 유니세프, 북한 당국의 공동조사 당시 산간지역 아동 중 19%가 심각한 요오드 결핍 상태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유아기의 요오드 결핍은 갑상샘 호르몬 부족이 되어 두뇌발달과 신체발육을 부진하게 한다. 산모가 요오드 결핍이어도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이 높아지고, 태아와 유아의 뇌손상을 유발해서 청각장애·발육지체의 원인이 된다. 나이가 들어서는 치료를 해도 두뇌성장과 신체발육 손상이 회복되지 않는다.

요오드뿐만 아니라 철·아연 등 필수 미량영양소는 미역·김·다시마와 같은 해초를 조금만 먹어도 충당할 수 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10여년이 지난 후, 그렇게 어려움을 겪은 아이들이 15~20살의 청년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핵실험까지 하면서 아이들 필수영양소도 못 챙겨주는 북쪽 권력은 통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럼 남쪽 어른들은 그동안 그 아이들을 위해 뭘 했나? 이 문제에 대해 남북한 당국은 이미 알고 있었다. 2003년 봄, 남과 북의 전문가들은 비교적 간단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바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큰 무기를 들고 큰 정치를 하는 어른들에게 작은 아이들의 미량영양소 문제는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정치 탓만 할 수는 없다. 남과 북의 관료주의는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늘 체면을 앞세웠다. 민간단체들도 권력의 기호에 맞추어 큰 과제, 큰 건물, 큰 행사를 우선하였다. 이 작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더 절실하게 더 열심히 노력하지 못한 남과 북 모든 어른들 탓이다. 내 탓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인천항 보세창고에 묶여 있던 북한 영유아들을 위한 조제유 원료와 설사약들이 유통기한이 지나 지난해 폐기처리되었다. 수많은 남한 사람들의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염려와 정성도 그렇게 중도에 막히거나 폐기되어 버렸다. 그사이에도 많은 아이들이 스러지고 시들어갔다.

요오드 결핍은 북한 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들 중 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요오드는 필수 미량영양소이기에 아주 적은 양만 부족해도 치명적인 장애를 일으킨다. 동시에 아주 적은 양만 공급해도 더는 필요 없도록 완전히 충족된다. 해법은 간단하다. 남서해안에는 해초가 풍부하다. 말린 해초는 값싸게 모아서 운반하기도 좋고 오래 보관하기도 쉽다. 군사적 의미도 없다. 남해안의 미역, 서해안의 김과 소금을 함경도, 평안도의 산골까지 보내자. 결국 이 땅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남과 북의 자연과 사람의 정성을 온몸에 받고 자라는 건강한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

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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