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 논설위원
무모할 정도의 신자유주의 몰입과
과도한 미국 경사도 잘못된 남북관계
설정과 전망 부재 탓이 아닐까
과도한 미국 경사도 잘못된 남북관계
설정과 전망 부재 탓이 아닐까
이명박 정권의 실패는 햇볕정책을 버리고 평양과의 대결노선을 택한 순간부터 이미 예정돼 있었는지 모른다. 이 얘기를 하려면 다시 한번 지난 1월 중순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로 돌아가 보는 게 좋다.
2008년 마잉주의 국민당에 패한 대만 제1야당 민진당은 이번 선거에서 전통적 표밭인 남부지역에 큰 기대를 걸었다. 민진당과 대만 남부지역 간의 관계는 우리로 치면 새누리당과 부산·경남 또는 영남지역 관계쯤 될까. 그런데 판단착오였다. 2004년 민진당 후보가 이겼을 때와 비교하면, 남부 6개 시와 현 지역의 민진당 지지표가 크게 줄었고 타이난과 가오슝, 핑둥 등 주요 도시들에선 목표치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타이베이 등 북쪽, 우리로 치면 서울 등 수도권에 취업중이던 남부 출신자들이 굳이 투표하러 고향에 가지 않았고 새로 유권자가 된 대학생들 다수가 기말시험을 치르느라 기권했다는 식의 분석들이 돌았다. 말하자면 그 지역 민진당 표밭은 굳건하되 우연적 상황 때문에 빚어진 일시적 현상이라는 믿음이 거기엔 깔려 있다.
하지만 잘하면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 속에 초박빙 접전이 예상됐던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 지지자들이 그만한 이유로 대거 기권했으리라고 보는 건 무리다. 또 기권 때문에 남부지역 민진당 지지표가 날아갔다고 보는 것도 그렇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민진당에 대한 민심 이탈이었다. 남부인들 다수가 이번엔 국민당 지지로 돌아섰거나 차마 그렇게까지 하진 못한 사람들이 아예 기권해버린 것이다. 부산·경남 유권자 다수가 새누리당에 등을 돌려버린 셈이다. 왜?
이번 선거의 또다른 특징적 양상 가운데 하나는 대만 기업인들이 성명 등을 통해 대거 ‘양안관계 역행 불가’, ‘양안 평화’, ‘하나의 중국 합의 준수’를 외쳤다는 점이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지속, 우리로 치면 햇볕정책 계속 추진을 요구했다는 얘긴데, 이건 국민당 지지 공개표명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사업중이던 대만인들이 투표하러 전세비행기로 고향으로 몰려간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것이 이른바 ‘2008년 효과’다. 그해에 집권한 마잉주 정권은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을 맺는 등 대만식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국공내전을 법적으로 청산하는 평화협정까지 가진 않았지만 양안관계를 대립과 긴장에서 주당 558편의 여객기가 왕래하는 대화와 협력의 우호·평화 관계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는 알려진 대로 양안 모두의 경제 호황과 안보불안 해소, 일상적 삶의 상대적 안정과 풍요였다. 불과 4년 만의 이 획기적 변화를 대만 유권자와 기업인들은 즐겼고 햇볕정책 이전, 즉 민진당이 주도했던 대립과 긴장의 양안관계로의 복귀를 거부했다.
대만에서 일어난 일은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으레 양안관계와 남북관계는 다르다느니, 그게 대만이 중국에 먹히는 길이라느니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설사 그런 주장대로 된다 하더라도 먹힐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건 남북관계에서는 남이 아니라 북일 테니, 햇볕정책 반대 흡수통일론자들이 그런 주장을 펴는 건 자가당착이다.
대만-중국 관계는 먹고 먹히는 관계를 이미 지났다. 함께 동시에 변하면서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선거 뒤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지지자들을 향해 패배한 차이잉원 후보가 한 말은 “민진당은 양안정책을 재고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올바른 양안정책 덕에 이겼다”고 한 마 총통의 말과 대비된다.
4년 전 우리도 ‘2008년 효과’를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대만과는 정반대로 갔다. 그게 이명박 정권 총체적 실패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한승동 논설위원sdha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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