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재벌이 사적 폭력을 동원하고
미행을 하는 것도 반칙과 특권의
유전자를 습득한 까닭이다
미행을 하는 것도 반칙과 특권의
유전자를 습득한 까닭이다
삼성가 상속다툼에 미행사건까지 불거져 인간 이맹희에 대한 정설이라는 <묻어둔 이야기>를 들춰봤다. 파란만장한 개인사보다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이병철과 박정희의 만남을 묘사한 장면에 눈길이 끌렸다.
쿠데타 당시 일본에 있던 이병철은 5월26일 귀국한 다음날 박정희를 만난다.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자진헌납이라는 형식으로 재산을 몰수하는 상황이었기에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였다. 이병철은 “경제인들을 죄인시하여 구속하는 것은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년에 삼성이 낸 세금이 전체 세금의 3%인데, 삼성 같은 회사 30개만 있으면 세금 걱정 안 해도 된다. 벌금 대신 그 돈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사업을 하도록 하자. 그래서 나중에 그 회사의 주식을 정부가 가지게 하면 된다”고 설득했다.
그래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가 만들어졌고 이병철은 회장을 맡는다. 경제인협회의 협의를 거쳐 벌금 낼 돈으로 직종을 정해서 공장을 세우도록 투자명령을 내린다. 오늘날 재벌 그룹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 결정에 따라 직종을 정했고, 결국 그 직종이 오늘날 그룹의 주요 사업이 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삼성은 뒷날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정권 초기 밀월을 즐겼다. 한비 밀수사건은 그 내막을 보여준다. 미쓰이 쪽에서 100만달러의 리베이트를 받기로 했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전이라 반입이 문제였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뜻밖에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돈을 가져오는 것이 힘들면 물건을 사와서 처분하면 될 것 아니냐. 덧붙여 박 대통령은 3분의 1은 정치자금으로, 3분의 1은 공장건설 자금, 3분의 1은 한비 운용자금으로 하라는 안까지 내놓았다. 그 돈을 단순히 운반만 할 게 아니라 몇 배로 부풀리라는 것이다. 어차피 정부가 눈감아주기로 했고 심지어 울산의 한비 건설현장으로 들어오는 배는 감시도 안 하기로 했으니, 청와대 몰래 크게 한탕 하자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변기, 전화기, 냉장고까지 품목을 확대하다가 나중에 말썽이 된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진 연유다. 세계 최대 비료공장을 짓겠다는 자부심이 그 바탕에 있었다고 한다.
재벌은 박정희의 유산이다. 박정희식 모델은 수출주도형 성장목표를 이루는 데 모든 과녁이 맞춰졌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고 효율성 앞에 민주성은 뒤로 물러섰다.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정경유착으로 뿌리내린 재벌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재벌은 스스로의 노력도 물론 있었지만 변칙과 특혜로 몸집을 키워왔고 일부 또는 상당 부분 장물의 성격을 지닌 자산을 갖게 된 것이다. 삼성가의 재산다툼은 자신의 힘으로 떳떳하게 벌지 않았거나 상속받지 않은 재물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짝을 이루는 한편에 정수장학회가 있다. 권력은 특혜의 대가나 핍박의 산물을 장물로 취했다.
정치자금 같은 노골적인 금권 거래는 그사이 많이 자취를 감췄다. 재벌은 이제 동네 빵집, 골목 상권까지 싹쓸이해 지탄을 받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도 문제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총수의 특권의식이다. 세계 최대 공장을 짓겠다는 자부심으로 밀수를 정당화한 데서 보듯, 국부 창출에 기여하는 만큼 웬만한 불법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재벌이 사적 폭력을 동원하고 불법 미행을 감행하는 것도 반칙과 특권의 유전자를 습득한 까닭이다.
역대 재벌개혁 논의를 보면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특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재벌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정경유착의 유산과 장물을 박정희기념관에 깨끗이 묻어야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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