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권 논설위원
정수장학회는 강압의 결과물인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증여된 것인가?
박근혜 위원장의 역사인식을 묻는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증여된 것인가?
박근혜 위원장의 역사인식을 묻는다
<에스비에스> 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얼마 전 흥미로운 대목을 봤다. 자신이 모시던 회장을 죽이고 유서까지 조작해 천하그룹의 새 회장에 오른 모가비 비서실장은 중역들을 모아놓고 술수를 부린다.
그는 회의실 벽에 걸린 사슴 그림을 가리키며 “저 말 그림은 누가 걸어놓은 거냐”고 묻는다. 한 간부가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고 답하자, 모가비는 독기 어린 눈으로 “잘 봐라. 저게 사슴으로 보이냐”고 다시 추궁한다. 그러자 겁에 질린 대부분의 임원들이 말 그림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모가비의 행동은 고사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패러디다. 자신의 뜻이라면 사슴도 말인 것처럼 믿고 충성하라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모가비의 행동에서 퍼뜩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떠올랐다. 지난 2월24일 서울중앙지법이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고 김지태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주식을 증여한 사실이 인정돼 취소할 수는 있으나, (취소할) 시간이 지났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뒤, 새누리당의 풍경이 천하그룹과 너무 닮았다고 느껴진 탓이다. ‘강압’이라는 판결이 나왔는데도 새누리당 안에서 박 위원장의 태도 변화를 거론하는 목소리는 공개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뒷전의 걱정과 수군거림만이 조그맣게 들린 뿐이다.
박 위원장은 법원 판결 며칠 뒤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 뭔지가 중요하다. 변한 게 없으니까.”(2월29일, 청주대 기자간담회)
그렇다. 박 위원장의 말대로 핵심은 결국 ‘사실’이다. 박 위원장이 믿는 ‘사실’은 도대체 뭘까?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5년 “(정수장학회 전신인) 5·16 장학회는 1962년 부산 기업인 김지태의 부일장학회 재산을 중앙정보부가 강제로 헌납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의 박 위원장 발언을 살펴보자.
“정수장학회도 제대로 된 서류가 있는데 진실위에서 날짜를 위조하면서 강탈했다고 주장했다.”(2005년 12월9일, <국민일보> 인터뷰)
“정수장학회를 강탈했다고 하고, 사회 환원해야 한다는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다. 강탈했다고 계속 주장하면 법적인 조처를 취하겠다.”(2005년 9월15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
한마디로 강탈은 터무니없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당시 박 위원장은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진실규명 움직임을 ‘역사왜곡’이자 자신에 대한 흠집 내기라고 비난했다.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치공방의 영역으로 끌고가 흐지부지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12년, 박 위원장은 여당의 일인자이자 견줄 사람이 없는 여권의 대선 후보다. 검찰이든 법원이든 그의 눈치를 보지 않기가 어렵다. 아니면 적어도 중립의 자리에 서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런 환경 아래서 법원은 “강압에 의해 주식이 증여됐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박 위원장은 사실이 변한 게 없다고 말할 뿐이다. 박 위원장의 외눈박이 고집에 새누리당 안에선 강압을 강압이라 말하는 이가 없다. 모가비의 천하그룹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박 위원장으로선 지겨울지도 모르겠으나, 정수장학회를 매듭짓지 않고는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로 발돋움하기 어렵다. 지도자의 자격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박 위원장에겐 자신의 역사인식을 평가받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바로 정수장학회다. 질문을 간추려보자. ‘정수장학회는 강압의 결과물인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증여된 것인가?’ 장학회의 사회환원 여부와는 별개로 박 위원장의 역사인식에 대한 물음이다. 박 위원장이 분명하게 답할 차례다. 정재권 논설위원jj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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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강탈은 터무니없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당시 박 위원장은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 진실규명 움직임을 ‘역사왜곡’이자 자신에 대한 흠집 내기라고 비난했다.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치공방의 영역으로 끌고가 흐지부지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12년, 박 위원장은 여당의 일인자이자 견줄 사람이 없는 여권의 대선 후보다. 검찰이든 법원이든 그의 눈치를 보지 않기가 어렵다. 아니면 적어도 중립의 자리에 서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런 환경 아래서 법원은 “강압에 의해 주식이 증여됐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박 위원장은 사실이 변한 게 없다고 말할 뿐이다. 박 위원장의 외눈박이 고집에 새누리당 안에선 강압을 강압이라 말하는 이가 없다. 모가비의 천하그룹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박 위원장으로선 지겨울지도 모르겠으나, 정수장학회를 매듭짓지 않고는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로 발돋움하기 어렵다. 지도자의 자격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박 위원장에겐 자신의 역사인식을 평가받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바로 정수장학회다. 질문을 간추려보자. ‘정수장학회는 강압의 결과물인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증여된 것인가?’ 장학회의 사회환원 여부와는 별개로 박 위원장의 역사인식에 대한 물음이다. 박 위원장이 분명하게 답할 차례다. 정재권 논설위원jj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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