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요즈음같이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의 입맛이 소태 같은 때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정권교체의 희망이 생겼다며 만나면 선거 얘기부터 하던 사람들의 입이 닫혔다. 자발적으로 총선후보 결정을 위한 국민경선 참여를 권하던 사람들이 “찝찝해서 더 이상 전화 못하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민주당을 찍겠다고 벼르던 보수적 성향을 지닌 친구도 지난 주말 산행에서 만나보니 생각이 많아진 눈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당 지도부가 비리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임종석 사무총장을 공천한 것이 핵심이다. 국민은 민주당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을 지도부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판단한다. 더욱이 선거 실무책임자인 사무총장이 당사자라는 점에서 허탈해하기까지 한다. 민주당 지도부의 눈에는 안 보였을지 모르나,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당 지도부가 공천 잣대를 뒤흔들어 버렸기 때문에, 뒤에 아무리 훌륭한 공천을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고, 탈락자들의 불공정 항의가 잇따르리라는 것이 뻔히 보였다.
민주당 지도부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국민에게 생소한 법적 용어를 들고나와 다른 소리를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 잣대는 억울해도 공천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선거는 재판부가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잣대로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다. 국민은 임 총장의 무죄를 확신한다며 1심 유죄판결에 정치적 면죄부를 주려는 민주당에 역정을 냈다. 많은 이들이 임 총장의 무죄를 확신하지만 그가 공천을 받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해온 당 지도부가 어떻게 국민의 판단과 동떨어진 기준을 거리낌없이 내놓았는지 의아해한다. 정당이 국민이 무시된 그들만의 집단사고에 빠지면 위험하다. 그것은 선거에서 필패를 몰고 오며, 집권을 했다 하더라도 실정의 원인이 된다.
국민에 대해 진정성을 지닌 정당이라면 최소한 비리 문제를 두고서는 다소 억울한 경우가 나오더라도 추상같은 자기검열이 있어야 한다. 특권과 반칙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서 1%에 대항한 99%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것은 기만이다.
과연 민주당은 이 난국을 헤쳐나갈 길이 있을까? ‘있다’고 본다. 과오를 바로잡으면 된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이다.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말이다. 고칠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임종석 총장이 공천을 반납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당 지도부가 그릇된 판단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임 총장의 공천 반납은 굳이 역설하지 않아도 곧 스스로 결단을 할 것으로 본다. 그의 결단은 새로운 정치가 지켜가야 할 최소한의 대의이며, 국민이 민주당 정치인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임 총장의 공천에 대해 불편한 것은 국민이며, 쾌재를 부르며 그가 버티기를 바라는 것은 반대세력이다. 그들은 민주당의 도덕성과 무원칙을 비난할 수 있는 이 호재가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 항상 올곧은 길을 걷고자 했고 지혜로운 그가 이 아이러니에 대처하는 법을 모를 리 없다. 빨리 결단하고 사무총장으로서 그의 출중한 능력을 공천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을 극복하는 데 써야 한다. 나를 버림으로써 모두가 사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사과와 함께 도덕적 하자가 있는 공천을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심기일전하여 확고한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개인의 공천 반납이나 불출마 선언으로 지도부의 과오가 덮어지지는 않는다. 임 총장과 이화영 전 의원을 버젓이 공천자 명단에 올린 얼빠진 민주당 공심위도 자성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공천 탈락만 하면 불공정하다며 자동으로 항의 피켓을 드는 아수라장을 단호하게 정리하고 야권연대에도 내 허벅지 살을 떼어줄 수 있다는 결연한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말문이 다시 열리고 국민의 마음도 훈훈해질 것이다.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오를 인정하고 거리낌없이 고치는 용기는 더 귀중하다. 이를 깨닫고 더 늦지 않게 실행에 옮기는 것이 민주당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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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종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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