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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보스의 귀환 / 임석규

등록 2012-03-13 19:24

임석규 정치부 정치팀장
임석규 정치부 정치팀장
박근혜 위원장은
얻은 게 많지만
동시에 ‘구식정치’
이미지를 둘러썼다
시작은 창대하나 나중은 미약하다. 우아하게 문 열지만 누추하게 막 내린다. 4년마다 진행되는 국회의원 공천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서막은 ‘공천권 아웃소싱’이다. 정치권은 외부 명망가를 공천심사위원·위원장으로 위촉해 공천권 외부 이양을 선언하고, 외부 공심위원들은 감동공천, 공천혁명을 맹약한다. 낙천을 예감하는 이들의 안달과 공천을 내락받은 이들의 안도가 교차하는 사이, 스러지는 이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공천과 낙천을 가르는 잣대는 배신에 대한 응징, 추종에 대한 보은, 충성 서약에 대한 배려이기 일쑤다. 이어지는 불복과 탈당, 창당의 행렬 속에 험구가 난무하며 ‘공천극’은 아름답지 못한 결말을 맺는다.

당내 정치의 본질은 공천권 확보를 둘러싼 투쟁이다. 제아무리 외부인을 끌어들여 공천 심사를 해도 당내 권력은 결정적인 통제권을 내놓지 않는다. 이 바닥 물정 모르는 아마추어 외부인이 능란하게 숙련된 프로 정치인을 당해낼 순 없다. ‘공천권 아웃소싱’이란 그러므로 공천 과정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정치권이 뿌리는 방향제다.

국회의원은 ‘대표하는 사람’이다. 공천은 정당이 국민의 대표를 추천하는 행위다. 공천의 질이 곧 정치의 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당내 권력에 대한 추종과 충성 여부가 공천을 좌우하니 의원들이 국민을 보지 않고 당내 권력만 바라본다. 이렇게 금배지를 단 이들은 국민을 대표하지 않고 공천장을 준 당내 권력의 이익을 대표하는 데 앞장선다. ‘대표는 간 데 없고 추종자만 나부끼는’ 국회의사당이 되는 것이다. 정치의 실패를 초래하고 정당에 대한 시민의 외면을 부른 정치권의 거의 모든 악폐는 공천의 부조리함에서 비롯했다. 안철수 현상도, 광화문 촛불시위도 그 근원을 따지고 거슬러 올라가면 잘못된 공천이 발원지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공천에서 얻은 게 많다. 당을 ‘친박당’으로 물갈이하면서 더욱 많은 당내 추종자를 거느리게 됐다. 이는 대선 행보에서 탄탄한 조직력으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눈치 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다부진 리더십도 과시했다. 이재오 의원의 ‘수족’을 잘라 무장해제하고 김무성 의원을 무릎 꿇리면서 이탈세력의 구심점을 제거했다. 동시에 박 위원장은 손에 적잖이 피를 묻히게 됐다. 그가 시스템 공천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친박근혜 공천’임을 친박 핵심들도 인정한다. 그에게 더 큰 손실은 공천 과정의 온갖 악다구니와 뒤섞이면서 ‘낡음’, ‘구식 정치’의 이미지를 둘러쓴 점이다. 추종과 공천의 등가교환 속에 이뤄지는 낡은 정치의 복판에 있었던 탓이다. 이는 그의 취약층인 수도권과 젊은층에 또렷이 각인될 것이다. 그사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탈북자 농성장을 찾고 방송사 노조 파업에 지지를 보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공천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한때 ‘3김 청산’이란 구호가 정치개혁과 동일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제왕적 1인 보스 지배 타파를 외치는 요구였다. 박근혜 위원장이 10년 전인 2002년 2월28일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내건 명분은 총재직 폐지, 상향식 공천제 도입, 1인 지배체제 종식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3김이 물러나고 총재가 없어지면 ‘보스 정치’는 사라질 줄 알았다. 상향식 경선이 도입되고 외부인이 심사에 참여하면 공천이 민주화되고 정치의 질이 높아질 줄 믿었다. 그게 아니었다. 총재라는 이름의 보스가 사라진 그 자리에, 보스는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더욱 강한 지배력을 뿜어내며 화려하게 귀환해 있었다.

임석규 정치부 정치팀장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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