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 논설위원
냉전 붕괴 뒤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엇박자가
마침내 교감의 맞박자로 바뀔 수 있을까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엇박자가
마침내 교감의 맞박자로 바뀔 수 있을까
일본 보수파들조차 이젠 북과의 교섭에 나설 때라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그저께 서울에서 만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말했다. 바로 다음날 일본 집권 민주당 중의원 나카이 히로시 전 공안위원장이 이번 주말 북의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교섭 담당 대사와 만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싫어하겠지만 한국 시민세력은 환영하지 않겠느냐며 70대 중반에 접어든 와다 교수는 웃었다. 지난달 말 베이징 합의 이후 북-미 접촉은 더욱 빈번해졌고 북의 움직임은 날렵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어쩐지 밀려나 있는 느낌이다. 이건 통미봉남의 결과라기보다는 자폐에 가깝다.
지난 7일부터 사흘간 뉴욕에서 미주동포전국협회와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등이 공동주최한 세미나 풍경도 한국 정부의 소외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남쪽에선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백낙청·문정인 교수 등이 참석했고 북에서도 6자회담 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 등 비중 있는 인물들이 참석했다. 여기에 미국 쪽에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이 참석하기로 하면서 일이 묘하게 돌아갔다. 현 정부와는 이른바 ‘코드’가 맞지 않는 남쪽 참석자들 면면을 보건대, 정부는 처음엔 시큰둥해하다가 부랴부랴 대표단을 꾸려 보낸 듯하다. 정부간 공식모임은 아니었지만, 세미나는 마치 임기 말의 이명박 정부 이후 한반도 정책 구상을 논의하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 뒤늦게 결례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남쪽이 끼어들기 하듯 북쪽 대표들과 접촉하려 애썼지만, 별무 성과였다. 남북 관계개선이 우선이라고 노상 읊조리는 미국이 마음만 먹었다면 자리를 마련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2000년에 당시 북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에 가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갔다. 방북 계획까지 짰던 클린턴 민주당 정부의 대북 행보는 그해 말 대선에서 조지 부시의 석연찮은 승리로 무산됐다. 그때 앨 고어가 이겼다면 한반도와 한-미 관계는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 정부는 그 뒤 계속 엇박자로 놀며 냉전 붕괴 이후 반짝 열렸던 한반도 분단·대결 청산 기회를 날려버렸다. 클린턴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한 이른바 ‘에이비시’(ABC=Anything But Clinton)를 앞세운 공화당 대북강경파 부시 정부 때 한국은 햇볕정책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였다. 다시 한국이 노무현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한 ‘에이비아르’(ABR=Anything But Rho Moo-hyun)의 대북강경파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자 미국에선 공화당이 물러나고 민주당 오바마 정권이 등장했다. 이 엇박자는 클린턴 1기 정권-김영삼 정권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지금 모양새를 보건대, 냉전 붕괴 뒤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한국과 미국의 이 엇박자가 마침내 교감과 교호의 맞박자로 바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 두 나라 대선에서 재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오바마의 제2기 정부와 역시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정권교체 이후의 한국 정부의 조합. 그래 봤자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지만.
연락사무소 설치를 거쳐 북-미가 수교하고, 뒤이어 북-일 수교. 냉전 붕괴와 함께 이미 완결됐어야 할 남북 교차승인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체제불안에서 해방된 북과 남의 경제·문화 통합. 북핵과 탈북자 문제, 항상적 안보위기와 반목, 대국 의존, 경제난, 일천만 이산 등의 분단고통은 그런 과정을 거쳐 비로소 원천적으로 해소될 것이다. 또 헛꿈이 될지 모르나, 거대 중국의 등장이 상징하는 글로벌 지각변동 추세로 보건대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흐름이 아닐까.
한승동 논설위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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