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기본소득에 대한 루소적 상상 / 정영무

등록 2012-03-20 19:23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촛불시위와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진
흐름은 꼭 기본소득제가 아니라도
그러한 발상과 전환을 요구한다
요란한 공천 쇼가 마무리됐다. 선거전의 결과는 4월11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역시 높았다. 여야가 내세운 인물이나 정책이 변화에 대한 기대치를 크게 밑돌기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장만능의 삶의 조건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됐다. 지난 한해 1 대 99로 상징되는 월가 시위가 지구촌을 휩쓸었고, 국내에서는 안철수로 상징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열망이 분출했다. 공정한 사회와 약자 보호를 위한 국가의 귀환을 바랐다.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패러다임을 바꿔줄 수 있는 것은 정치밖에 없어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블랙홀처럼 여의도로 수렴되는 지금의 정치는 관성에 지배되는 그들만의 리그, 어쩔 수 없는 왜소함을 노정한다. 여야가 경제민주화다 복지다 내세우고 있지만, 증세 없이 기존의 틀 안에서 짜깁기하겠다는 정도로는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실업자·해고자·영세자영업자에게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빈곤의 문제는 특정한 빈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위험이 됐고 빈곤의 고통은 이미 임계점 수준에 이르렀다.

올해 탄생 300돌을 맞는 장 자크 루소는 불평등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일찍이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루소는 자본주의가 막 싹트던 시대에 그 부작용을 예감하고 경제불평등이 사회악과 사회갈등의 근원이라고 단언했다. 루소에게 평등은 공동체 모두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공존·공영하는 공화주의의 근본이념이다. 경제불평등이 만악의 근원이므로 모든 입법체계의 목표는 자유와 평등이 돼야 하며, 경제적 평등이 없다면 일반의지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국가는 경제적 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또한 공공선을 지향하는 일반의지에 따라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사유재산제를 일부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루소의 선구적 견해는 빈부격차가 근래 가장 크게 벌어진 우리 사회에 울림을 준다. 이대로 가면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고착화할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루소는 사회 구성원들이 재산을 소유하되 너무 많지도 않고 남에게 지배당할 만큼 적지도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모든 사물은 결국 정치에 좌우된다는 것, 그리고 국민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정부의 성격에 의해 제한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의 생각이다.

개인과 사회의 파괴를 가져오는 경제체제에 대한 루소적 대안에는 그렇다면 기본소득제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다. 보편 복지의 한 갈래인 기본소득은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릴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지난 주말 진보 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기본소득국제대회에서는 소득의 원천인 임금노동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방법은 축적된 부를 생산자인 사회 구성원에게 되돌려주는 길뿐이라고 했다. 기본소득은 삶의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일자리와 활동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한다. 물론 막대한 재원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아파도 좋다. 단지 지갑에 돈이 없어 기본소득운동을 한다’고 답답한 청년들은 외친다.

정영무 논설위원

정치는 가능성의 기술이다. 돈 때문에, 시장논리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은 관료나 경제학자들의 언설이고, 정치가는 국민이 원하는 바는 어떻게든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촛불시위,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은 꼭 기본소득제가 아니라도 그런 정도의 급진적 발상과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표를 달라고 하기 전에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근원적인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

you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이 대통령, MBC사장에 반말로 ‘김재철이…’”
야당이 수도권 이겨도 새누리가 1당 가능성 높아
“닥치고 기소!” 이 검사들을 잊지마세요
싼 전세 내놓은 집주인에 “매물값 올려라” 요구
아이 침 안흘리게 하는데 미꾸라지 국물이 특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