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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경제사막화와 그 세력들 / 김용창

등록 2012-03-28 19:33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경제와 국토공간의 사막화를
부채질하는 경제 불가사리
집단과 그를 숭배하는 세력들
우스갯거리로 신문에 심심치 않게 나는 토막기사와 그림이 있다. 뱀이 큰 동물을 욕심껏 처먹다가 배 터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소화도 못 시킨 채. 애플·도요타·월풀 등과 같은 글로벌 초일류기업과 일합을 겨루는 것을 자부하고, 국민들도 때로는 감격스러워하는 그 기업들이 다방과 빵집을 하고, 순대와 청국장 장사를 한다고 해서 한동안 시끄러운 적이 있다.

지난 2월 말 공정거래위원회 발표를 보면, 2011년 4월 기준 35개 민간 대기업집단의 계열회사는 1205개사이며, 최근 4년간 이들이 새로 편입시킨 계열사는 652개라고 한다. 이 가운데 집단 전체 계열사 관련분야나 출자회사 관련분야 기업이 372개로 57%를 차지한다. 워낙 손대는 업종이 많은 한국의 대기업집단이기 때문에 말이 관련분야 진출이지 모든 업종이 관련분야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신규편입 회사 가운데 소위 신성장 동력 분야 진출은 4.6%(30곳)에 불과하며, 75.5%(492곳)가 부동산업 등 서비스업이고, 비제조업 분야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는 대기업의 빵장사, 순대장사, 식자재유통업 진출과 같은 싹쓸이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또한 286개 공공기관 중 86곳이 181개 식당을 위탁운영하고 있는데 41%인 74개 식당을 대기업집단이 운영하고 있다. 오죽하면 친기업 정부라는 이 정부에서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세탁비누, 고추장, 골판지상자 등과 같은 업종을 골라 중소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을 시행하려 했을까.

걸핏하면 정부 정책이 시장원리를 위배한다, 경제학 책에 없다 하지만 정작 가격인상 담합, 입찰 담합, 부당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편법 증여와 상속, 정보 조작 등 시장원리의 핵심이라는 경쟁원리를 대범하면서도 큼지막하게 위반하는 것은 대기업집단들이다.

1947년 프랑스의 저명한 지리학자인 장프랑수아 그라비에는 파리의 극단적인 집중을 일컬어 ‘파리와 나머지 프랑스의 사막’이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파리 대도시권이 프랑스 전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전 국토의 자원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독점기업집단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자연적 원인과 더불어 산림벌채, 환경오염, 과잉경작 등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토지의 잠재능력이 떨어지고, 종국에는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는 것을 일컬어 자연지리학에서는 ‘사막화’라고 한다.

작금의 한국 경제는 ‘경제사막화’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결국에는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경제생태계의 파멸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경제력 집중은 돈의 집중을 넘어 권력의 집중을 낳는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탄한 대통령도 있었다. 동반성장정책을 아예 대놓고 무시하면서 사회주의·공산주의에도 없는 정책이고 나라 망치는 방향이라고 고성을 지른 대기업 총수도 나온다. 급기야는 자기들이 무슨 독립왕국이라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조직적으로 거부하면서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교묘히 위장하고 있지만 더불어 살 생각이 없는 집단과 세력들이 있다. 경제와 국토공간의 사막화를 부채질하는 경제 불가사리(不可殺伊) 집단과 그를 숭배하는 세력들이다. 경제사막화는 한국 경제의 자기부정이다. 이제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하는 성장 품질이 중요하고, 사회 구성원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분배의 품질이 중요하다. 이 영토에서 경제체제를 선택할 수 있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총선이 다가온다. 이슬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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