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민포럼 정책위원장 겸 대변인
해방 후 정치사의 태반을 지배한
독재정권 탓에 우리는 사찰에
철저히 분노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독재정권 탓에 우리는 사찰에
철저히 분노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이명박 정권 쪽에 의한 민간사찰을 ‘더러운 정치’라고 언급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197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자 호르헤 비델라가 비판자들에게 자행한 고문 테러와 암살을 일컫는 ‘더러운 전쟁’이란 말은 세계 시사용어사전에 올라 있다. 그러나 그 더러운 전쟁은 아르헨티나에 앞서 한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남미의 군사독재자보다 훨씬 먼저 1960년대 박정희가 더러운 전쟁의 선배였다. 그리고 정치적 감시를 뜻하는 사찰은 고문 악행과 탄압을 위한 것으로 ‘더러운 전쟁’의 첫 단계를 의미한다.
국무총리실이 국민에 대해 광범위한 사찰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비판적인 언론인과 여야 국회의원까지 약점잡이식 사찰을 했다니 우리가 아직도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 정치문화 속에 살고 있음을 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을 비판한 여당 의원을 만난 그 지인들이나 이름 없는 산부인과 병원도 사찰 대상에 들어 있었다. 직무를 빙자하여 무차별적인 국민 사찰을 자행한 것이다.
국민소득이 역대 최고로 2만달러를 넘어서면 무엇하겠는가. 사찰정권의 번뜩이는 감시 눈길이 온 국민의 뒤를 캐는 야만 체제가 온존하는 한 우리는 ‘배부른 돼지’일 뿐임에랴.
국민을 감시하는 사찰은 본래 정통성 없는 권력자들의 행태다.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독재권력이 대중에 대한 정보사찰을 전담하는 기구를 두었다. 독일 히틀러 정권의 게슈타포, 일제의 특별고등경찰부(특고)와 헌병대,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가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도 우리에게 악연이 깊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일제가 항일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사상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설치한 특고였다. 일제 경찰과 헌병은 조선인 밀정과 보조원을 두고 사냥개처럼 부렸다.
불행한 것은 해방 후 대한민국 경찰의 핵심을 일제 특고 출신이 점령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사상 탄압의 기술자로서 반공주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경찰조직에 파고든 것이다. 일제 경찰이 독립운동가와 사회주의 활동가를 일컫는 불령선인 기록부는 해방 후 요시찰인 명부로 둔갑해 전국의 면 단위 지서에까지 내려보내졌다. 그것이 본인뿐 아니라 자식들까지 연좌제의 족쇄를 채웠다. 그러고는 끊임없이 감시하고 언행을 탐지해서 동향보고를 올려 이들의 사회적 계층 상승을 막았다. 한국의 민간사찰은 이렇게 고질적 토착병처럼 자리잡았다.
해방 후 현대 정치사의 태반을 지배한 독재정권 탓에 우리는 사찰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반문명 사회의 저급한 몰골인지 철저히 분노하고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줄 모르는 것 아닌가 자성해 보아야 한다. 특히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군사권위주의 정권을 견뎌내면서 정보사찰 통치에 무감각하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정보장교 출신들이 중앙정보부를 창설하면서 국민 사찰은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의 더러운 전쟁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중앙정보부가 최고 사령탑이었다. 거기에 군 보안사와 경찰 특수대도 가세했다. 사찰, 고문, 테러, 강제해직, 의문사라는 비인간적 만행을 국가 기구가 저질렀다. 그래서 박정희 권력이 체제폭력에 관한 한 ‘부끄러운 세계 최고’를 차지했다. 오늘날 정보부도 경찰도 아닌 총리실의 행정팀이 국민 사찰을 감행했으니 그 박정희의 정보통치 유전자가 되살아났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박정희 후예세력의 정권으로서 면모를 과시한 셈이다. 국민 모두가 제대로 분노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라는 악의 고리를 끊어버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재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민포럼 정책위원장 겸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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