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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말과 소통] 심판, 복지, 그리고 연대

등록 2012-04-03 19:27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이 셋을 이뤄내는 계기가 된다면
이번 총선은 과거 어느 선거보다도
값진 역사적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4·11 총선은 중요한 전환기에 치러진다. 세계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이후 체제’에 대한 모색이 한창이고, 나라 안에서는 ‘2013년 체제’가 얘기된다. 그 배경에는 양극화 심화와 위기의 일상화로 요약되는 냉엄한 현실이 있다. 말만의 변화가 아니라 질적이고 구조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은 이를 위해 분명한 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돼야 한다.

새 출발을 하려면 현실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반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화해야 한다. 각각에 해당하는 핵심 단어가 심판·복지·연대다. 이 셋을 이뤄내는 계기가 된다면, 이번 총선은 과거 어느 선거보다도 값진 역사적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현실은 명료한데도 말의 구도는 그렇지가 못하다. 선거 때면 대개 그렇듯이 진실을 은폐·왜곡하는 말 장벽, 대중을 현혹시키려는 말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임기 말 선거의 특성상 심판은 기존 집권세력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지만, 의미의 내용을 교묘하게 바꾸려는 전치(轉置)가 집요하게 시도된다. 여권은 자신의 아킬레스건 가운데 하나인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부각되자 이전 정권을 끌어들여 물타기를 시도한다. 이전 정권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제주해군기지를 추진했다고 강조하는 것도 전형적인 물타기다. 지난 대선 때는 중도개혁 성격의 노무현·김대중 정부에 좌파정권이라는 딱지를 붙여 효과를 봤지만, 이제는 거꾸로 이전 정권과의 유사성을 강변하는 것이다. 이런 전치 시도가 되풀이되는 데는 말로서 국민의 생각을 좌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오만이 자리잡고 있다.

복지에 대한 요구는 길게는 지난 수십년간, 짧게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 국민의 인식이 응결된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복지가 시행되기도 전에 말 가치의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는 낮은 수준의 복지 공약들을 제시해 맞불을 지르면서, 포퓰리즘과 세금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해 복지에 대한 거부감을 유도하는 전략이 사용된다. 복지라는 말을 폐기하자고 할 수는 없으므로 말 폭탄을 쏟아부어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돈을 마구 풀어 돈 가치를 낮추고 그 과정에서 기득권층이 인플레 이익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거 독재정권은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연대에 대해서는 야권연대의 한 축인 통합진보당을 주된 대상으로 해서 ‘그들이 득세하면 …된다’는 식의 공격이 시도된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를 부추기는 일종의 불안 마케팅이다. 말의 장점인 풍부한 상상력이 악용되는 경우다.

연대는 단순히 정치세력 간 연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대는 도시민·여성·노동자·자영업자·농민·지식인·장애인 등 다양한 처지에 있는 99%의 주체들이 자신의 생활세계를 내실있게 꾸려가면서 함께 공동체적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연대는 신자유주의 이후 시대에 민주주의가 실행되는 바탕이라는 점에서 값지다. 생각과 제도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에 힘을 주는 것이 소통이고, 연대는 소통의 결과이자 소통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이 중시한 ‘인’도 ‘만물의 소통’으로 풀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연대다.

말이 혼란스럽더라도 다수 국민이 생활에서 느끼는 생생한 정서와 고통은 쉽게 바뀌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이번 선거의 열쇳말인 심판·복지·연대가 모두 소중하지만 굳이 하나만을 꼽자면 연대가 가장 앞서는 까닭이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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