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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베일 벗은 박근혜의 미래 / 정영무

등록 2012-04-12 19:17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대선을 향한 그의 전략에
이미지의 제물로 바쳐지고 말았다
총성 없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갔다. 전쟁이 비극이라면 선거전은 진면목을 드러내는 희비극이다. 살아남은 자나 쓰러진 자 모두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겠지만 나는 먼저 서울 노원병에서 압승한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에게 마음이 간다.

노 당선자는, 지금은 잊혀가고 있지만 지난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으로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대선 자금 및 검찰 떡값을 은밀히 의논한 내용을 안기부 직원이 몰래 도청했다. 국회의원이던 노씨는 이 자료를 입수해 엑스파일에 등장하는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폭로의 대상이 된 개인이나 삼성재벌, 검찰은 명예훼손이 됐다거나 노 의원의 폭로가 면책특권 대상이 아니라며 초점 흐리기 공세를 시작했다. 결국 검찰이 노 전 의원을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그는 기나긴 재판의 고통을 아직도 겪고 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벌을 받지 않고 죄를 폭로한 사람이 사법적 처벌을 받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노 전 의원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에게 평등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역사의 법정에서 무죄가 선고돼야 할 사안이 현실 법정에서 유죄가 되는 사례는 안타깝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괴리 때문에 현실 법정에 분노하고 그로 인해 사회가 진전하기도 한다. 노회찬의 승리는 재벌·언론·법조권력의 공모를 깨고 국민의 법정에서 무죄평결을 받은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선거의 여왕’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몇 달 전부터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해 주목했다. “무늬만 바꿔선 신뢰받지 못하며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고 사회 각 분야의 불평등 구조를 혁파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전권을 부여받았기에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엿보게 했다. 선거 기간 내내 박 위원장의 열쇳말은 미래와 민생이었다.

놀랍게도 새누리당의 정강정책 제1항은 행복한 복지국가 건설로 바뀌었지만 복지국가에 걸맞은 알맹이를 찾기 어렵다. 이렇다 할 재벌개혁 공약도 없다. 진보진영의 전유물인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상품으로 만들었지만 내용물은 초라하다. 새누리당의 복지 프로그램은 이미 시행되고 있는 무상보육에 주로 국한돼 있다. 복지국가에서 중추적인 제도로 여겨지는 무상의료는 오히려 위험한 물건으로 취급된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된 무상급식 민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벌 문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부당하게 확대한 경제력집중을 교정할 생각은 전혀 없고 단지 앞으로 더 나빠지지 않게 막겠다는 정도다. 대기업 해체 세력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구호는 단골 메뉴였다. 과거와 단절된 미래를 말하지만 복지와 재벌 정책이 별게 없어 실제로 달라질 일이 없는 것이다. 민생을 살려 달라는 시장통 영세상인의 호소에 가슴이 미어진다는 그의 레토릭은 그래서 ‘국익이 우선이고 대기업이 중요한데 어쩌겠냐, 힘들어도 좀 참으세요’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난 구조개혁에 대한 시대적 열망이 서글프게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이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대선을 향한 그의 전략에 이미지의 제물로 바쳐지고 말았다.

선거 바람이 쓸고 지나간 자리의 한 곳에서 정의의 해원을 보고 또 한 곳에서 욕망의 앙상한 뼈대를 본다. 시간은 미래로부터 오지 않는다. 과거의 강이 흘러 미래로 갈 뿐이다. 노회찬에게서 미래를 보고 박근혜에게서 과거를 본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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