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문화방송> 프로듀서
여야 어느 쪽도 대선에서 승리를
자신하지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할 호기다
자신하지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할 호기다
총선 패배의 원인을 두고 야권이 설왕설래 중이다. 그 와중에 공영방송의 낙하산 체제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낙하산 사장들이 지배하는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이 새누리당에 유리한 보도를 함으로써 야권이 불공정경쟁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화방송 노조는 이번 총선보도를 역사상 보기 드문 편파보도로 규정하고 있다.
민간인 사찰과 김용민 막말 파문, 표심이 출렁댄 두 가지 사건에서 공영방송들은 어김없이 새누리당에 유리한 보도를 했다. 민간인 사찰은 현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인데도 ‘사찰 문건의 80%는 노무현 정부의 것’이라는 청와대 주장을 크게 보도했다. 결국 민간인 사찰이라는 엄청난 범죄가 이미 수명이 끝난 지 4년이 지난 정부와 현 정부가 같이 책임질 문제로 변해버렸다. 김용민 후보의 막말 문제가 불거지자 마치 김 후보 사퇴 여부가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문제인 양 반복해서 다루었다. 총선 1주일 전인 4월4일부터 5일 동안 매일 큰 뉴스로 다룬 것이다. 반면 학술단체협의회가 ‘논문 표절’이라고 판정한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 문제는 간단하게 언급하고 지나갔다. 새누리당 김형태 후보의 ‘성폭행 의혹’이나 하태경 후보의 ‘독도 발언’ 같은 것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한국방송·문화방송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2011년 광고주협회가 성인 남녀 1만명을 조사한 결과 뉴스를 보기 위해 ‘티브이를 이용한다’는 답변이 66%였다. 인터넷은 16%, 신문은 13%였다. 신뢰하는 매체로는 77%가 방송을 꼽았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팟캐스트가 새로운 역할을 해도 대다수 국민은 방송의 영향을 받는다. 티브이, 그중에서도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한국방송·문화방송의 사장은 사실상 대통령이 결정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공정한 방송과 여야의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하다.
방법은 있다.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하는 방식을 바꾸면 된다. 문화방송의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명 중 5명의 표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사 9명 중 6명을 여당이 추천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여당 이사들만 뭉치면 아무리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사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 증언대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다.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야가 6 대 3이 아니라 동일한 지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사장 선출을 하기 위해서는 두 정파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타협을 통해 선임된 사장은 여야 어느 일방의 낙하산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 어느 쪽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자신하지 못하는 지금이야말로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할 호기다. 어느 쪽이든 권력을 차지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도 ‘민주주의 틀 속에서 국가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개혁이 필수’라는 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낙하산들은 언론인의 저항을 해고·징계·인사발령의 칼바람으로 정리해 공영방송을 낙하산 체제로 만들었다. 과거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발휘되던 공영방송의 정부 견제·비판이 사라지자 대통령의 권력은 통제 불능이 되었다. 그 결과가 민간인 사찰, 증거 인멸까지 감행한 현 정부의 모습이다. 다시는 이런 파행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보수건 진보건, 어느 쪽이 집권해도 휘둘리지 않고 오직 국민을 바라보는 공영방송 만들기!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몰두해야 할 화두다.
최승호 <문화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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