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악보에서 악곡의 어느 부분을 되풀이하여 연주하거나 노래하도록 지시하는 기호를 도돌이표라고 한다. 국제사회는 3년 전에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으로 규탄했듯이 이번에도 같은 성명을 냈다. 당시 북한은 반발하여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유엔은 다시 이를 응징하기 위해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발동하였다. 이 가운데 의장성명까지는 마치 도돌이표가 있는 것처럼 3년 전과 같다.
이제 북한이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해 자주권을 내세우며 반발하여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지난 3년이 통째로 반복될지도 모른다. 반면에 낮은 가능성이지만 북한이 반발하면서도 핵실험 단추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이 도돌이표는 끝나고 일시적인 교착국면을 거쳐서 새로운 한반도 정세가 전개될 수도 있다.
지금부터의 북한 대응이 향후 수년간 한반도 정세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겠지만 북한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김정일 시대였다면 당연히 핵실험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전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서는 북한의 외교 행위에 투명성 제고와 실용주의적 측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이번 대응에도 그것이 반영될지가 주목된다. 이번 위성 발사만 해도 북한은 2009년과 달리 사전에 국제사회에 충분히 고지하고 발사 현장도 외부 인사와 각국 언론에 공개하였다. 또한 발사 실패를 즉각 인정하였다. 키리졸브 훈련 기간에는 처음으로 서방 언론에 자신의 대응 군사훈련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으로 인해 고조된 북한 내부의 긴장상태에 스스로 김을 뺀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북한의 대응이 우격다짐이나 물리적 충돌에서 선전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북한이 위성 발사라는 도발을 하면서도 다른 쪽에서 보여온 변화가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한 실리적 대응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곧 북한의 반응이 나타나면 우리는 이 도돌이표의 끝이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다음 수순의 진행 여부를 북한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위기가 의장성명 선에서 마무리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이 반발하여 3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유엔이 추가 조처를 발동하는 악순환으로 빠질 경우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 강화만 도와줄 뿐 국제사회가 얻을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으로 안보리 의장성명과 제재를 되풀이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였다. 3년 전 한·미는 안보리 의장성명과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통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징을 시도했으나 북한의 핵능력은 오히려 강화되고 또다른 위성은 어김없이 발사되었다. 북한은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시켰다. 북한은 지난 2년간 대중국 교역을 갑절로 늘렸으며 작년에 광물 수출로만 전년 대비 136% 증가한 16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지금은 더하다. 한·미·일의 대북 제재는 이미 몇 겹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더 제재를 가중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미국이 2·29 합의에 따라 지원하기로 한 식량도 이미 중단되었다. 중국만이 북한에 대한 제재 수단을 가지고 있으나 중국이 의장성명에 동의했다고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북한과 두 개의 경제특구를 공동으로 개발해 왔고 무산의 막대한 철광을 실어 나르기 위해 한창 철도공사를 하고 있다.
안보리 의장성명은 국제사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성명이 한·미 양국에서 북한 도발을 억제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여론 악화를 무마하고 중국의 ‘북한 편들기’ 이미지를 완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정작 북한에 대해서는 미미한 효과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북한이라는 몸체에 제대로 닿지도 않는 회초리를 휘두른 대가가 북한 핵실험이라면 너무 비싼 기회비용이다. 따라서 이제 제재수단을 잃은 상태에서 되풀이되는 이 도돌이표 악순환을 넘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피지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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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이종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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