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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나무 이름표 / 강재형

등록 2012-04-19 19:04

‘나체팅’이란 게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던 한 ‘유원지’의 낮은 소풍 온 학생들과 가족들의 놀이터였고, 밤은 ‘나체팅’하러 모여든 젊은이들의 차지였다. ‘나체팅’은 ‘나이트(밤) 체리블로섬(벚꽃) 미팅(사교모임)’의 앞뒤 글자를 뽑아 만든 말이니 ‘유원지의 나체팅’을 오해하지는 말자. ‘창경궁’이 ‘궁’(宮)의 위엄을 잃고 ‘창경원’으로 불리던 시절의 일이니까. ‘창경원’은 1980년대 중반에 와서야 ‘창경궁’으로 제 이름을 찾았고, 일제가 마구잡이로 심어놓았던 벚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 나무들이 지금 어린이대공원과 여의도 등에서 벚꽃을 피우고 있다.

여의도는 요즘 벚꽃놀이가 한창이다. 인파로 술렁대고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곳에서 그나마 한갓진 곳을 찾았다. 동여의도 한편에 있는 앙카라공원이다. 거기엔 벚나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산홍, 산수국, 좀작살나무, 수수꽃다리, 진달래, 백리향, 목련…. 갖가지 나무들은 이름표를 걸고 있었다. ‘꽃은 연분홍으로 피고 삭과로 열매 맺는다’, ‘8~9월에 협과로…’, ‘9~11월에 핵과로…’, ‘9~10월에 시과로…’라 적힌 설명을 보면서 절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책상머리에 앉아 확인해보니 이런 거였다. ‘삭과: 익으면 과피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나팔꽃 따위)’, ‘협과: 열매가 꼬투리로 맺히며 성숙한 열매가 건조해지면 심피 씨방이 두 줄로 갈라져 씨가 튀어나오는 열매(콩·완두 따위)’, ‘핵과: 씨가 굳어서 단단한 핵으로 싸여 있는 열매(복숭아 따위)’, ‘시과: 껍질이 얇은 막 모양으로 돌출하여 날개를 이루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 흩어지는 열매(단풍나무 따위)’(표준국어대사전).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한자말보다 ‘튀는 열매’(삭과), ‘꼬투리열매’(협과), ‘씨과실·씨열매’(핵과), ‘날개열매’(시과)처럼 풀어쓰면 어떨까 싶다. 공원은 농학 전문가들이 아닌 시민의 쉼터이니까 말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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