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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우리가 사는 세상 / 김용철

등록 2012-04-22 20:53

김용철 종합편집팀 기자
김용철 종합편집팀 기자
절망의 벼랑 끝
죽음을 선택한다
희망을 퍼 올릴
출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지난 17일 안동의 여중생이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다. 15살 소녀였다. 유서에 이렇게 썼다. “진짜 내 장래를 위해 즐겁게 수업을 받기보다 강압에 의해 45분 동안 앉아 있는 훈련을 받고 있다.” 그날 오전 카이스트 학생이 기숙사에서 뛰어내렸다. “열정이 사라졌다. 정체된 느낌이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하루 전 영주에선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2 학생이 투신했다. 가족은 사망 다음날 아들을 화장했다. 지난달 30일엔 쌍용차 해고자가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임대아파트로 이사한 뒤였다. 그는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인가. 무엇이 이들을 헤어나기 힘든 고통의 굴레에 묶어둔 것인가. 모든 자살에는 이유가 있다. 더는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물러설 곳이 없을 때 극단의 선택과 마주한다. 그 절망을 사회가 안겨준 것일 때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 된다.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폭력에, 성적 줄세우기에, 정리해고에, 낙오자는 패배자로 낙인찍는 사회에서 현실은 정글과 다름없다. 정글의 법칙은 생존의 법칙이다.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먹잇감이 된다. 늘 생사의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공허한 메아리만 넘친다. 즐길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눈감은 채 다른 길을 가르치지 않는다.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22번째 죽음이 실려나간 해고자를 둔 회사는 눈 하나 꿈쩍 않는다. 무서운 사회다.

통계치를 보면 우리 사회의 발가벗은 모습이 적나라하다. 2010년 자살사망자 1만5566명. 자살률 세계 2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나라들 중에선 1위를 기록했다. 인구 10만명당 31.2명, 매일 42명이 자살했다는 말이다. 자살원인은 생계 비관, 학업 스트레스, 실업, 노인 빈곤 등이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청소년 9400명의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5명 가운데 1명이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었다. 초등학생이 13.7%, 중학생이 23.5%, 고등학생이 21.1%였다.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많았다.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와 무급휴직자 건강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무엇이 22번째 희생을 불러왔는지 알 수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정신건강 상태를 보면, 80% 이상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활고도 극심했다. 가구당 평균 빚이 4919만원으로 구조조정 이후 평균 3060만원이 늘어난 데 비해 평균 수입은 320만원에서 82만원으로 줄었다. 구조조정으로 퇴출된 뒤 수입이 전혀 없다는 노동자도 40명이나 됐다. 자살률 역시 일반인보다 5배 높은 10만명당 151명으로 나타났다. 실업이 불러온 우울증과 생활고가 자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매일 마흔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음의 행렬에 들어서지만 너무 조용하다. 모두가 죽음의 동조자 내지 방관자가 된 것인가.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과 소외 문제에 대한 대책이 겉돈다. 협력보다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에 대한 성찰이 없다. 뒤처진 사람들의 절망감을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둔다. 노동자의 잇단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며 바라볼 수만은 없다. 당장 내일 정리해고의 대상이 내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발레리는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뭔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변화를 위한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김용철 종합편집팀 기자 yckim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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