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아이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다
그 말이
나를 콕 찔렀다
‘이벤트’가 아니다
그 말이
나를 콕 찔렀다
벌써 두달째다. 다섯살 된 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나 어린이집 안 가면 안 돼?”라고 묻는다. 딸은 어린이집에서 새 반으로 옮겨 새 친구들과 적응하는 것이 힘든가 보다. 학기 초 옆반 선생님과 작은 오해가 있어 그 뒤로 오줌도 찔끔찔끔 싸댄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증거다. 아침마다 훌쩍이는 딸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짜증이 난다. 힘들어하는 딸을 위해 나는 휴가를 내어 키즈카페에도 가고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딸은 아침마다 내 속을 뒤집어놓는다.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꾹 참는다. 직장맘이라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다.
딸의 어린이집 부적응 문제로 마음이 무겁던 어느 날, 취재차 조선미 아주대병원 정신과 교수를 만났다. 여러 얘기를 나누던 중, 조 교수에게 요즘 부모들의 문제행동에 대해 물었다. 조 교수는 내게 이렇게 답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와 즐겁게 놀라고 하면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체험전, 전시전, 박물관 같은 곳이 북적거리죠. 그런데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거든요. 체험 많이 시켜준다고 아이들이 행복해할까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같아요.”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다’라는 그 말이 나를 콕 찔렀다. 취재하다 눈물을 흘리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날 나는 취재원 앞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다. 생각해보니 사랑을 이벤트로 생각한 사람이 나였다. 딸에게 최선을 다한답시고 나는 딸과 키즈카페에 가고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한번씩 친구들과 신나게 놀 기회를 제공해주면 엄마의 소임을 다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소 퇴근은 늦게 했다. 일찍 퇴근해도 첫째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애교 많은 둘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첫째가 칭얼대면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이집의 그림 숙제가 있는지 몰랐다가 다른 엄마가 말해줘 알기도 했다. 아무래도 어린 둘째에게 신경 쓰고, 첫째에겐 누나의 역할만 기대했다. 그 모든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나 스스로가 객관화됐다. 어쩌면 딸이 어린이집 문제가 아닌 엄마 사랑이 필요해서 아침마다 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굳이 내 경우가 아니라도 상당수 직장맘은 나처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선물로, 여행으로, 각종 체험으로 아이에게 보상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가오는 어린이날을 맞아 많은 엄마들은 지금도 장난감을 살지, 유명한 전집을 살지, 어디로 놀러 갈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흔히 육아서에서 양육의 기본 원칙으로 “아이와 눈을 보며 대화하라”고 한다. 책에서 그 구절을 읽었을 땐 그 의미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부모라면 날마다 아이를 보며 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은 그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절절히 와닿았다. 아이와 함께 있어도 실제로 함께 있지 않은 부모가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뭔가를 해줘야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랑 노는 것도 교구로 놀아주고 책이라도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아이의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다. 아이가 몸으로 하는 얘기에 관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은 이벤트가 아니라, 관심과 공감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줄 폴리 장난감을 고를 시간에, 폴리 노래를 배워 아이와 흥겹게 노래를 불러보자. 아이와 친한 친구가 누구고, 최근 아이가 그 친구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는 것이 사랑이다. 이번 어린이날은 내가 아이와 진짜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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