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통합진보당내 부정선거
절차민주주의 무시한 범죄행위
자진해산 여부 고민할 때
절차민주주의 무시한 범죄행위
자진해산 여부 고민할 때
4·19 혁명을 촉발한 3·15 부정선거와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했다. 통합진보당 내 비례대표 선출 과정에서의 부정선거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물론 관련자 일부에서는 선거 부정을 의도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진상조사위의 발표를 듣고 ‘역사적 사건은 반복되는데,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끝난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언급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선거 부정을 통해 이 경구는 한 번은 희극으로, 다른 한 번은 비극으로 고쳐 읽어야 할 듯하다. 사실 이번 부정선거 기획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으로 알려진 정치집단이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위장전입 등 조직적으로 선보였던 각종 희한한 행태는 공공연한 비밀의 일이었다. 그들은 당내 선거를 자신들의 정치적 단결을 과시하는 소동 내지 피크닉쯤으로 인식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서 이번 부정선거 비극의 뿌리는 소규모의 당내 선거에서는 사소한 반칙을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에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러한 무지가 현재의 화를 키웠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소규모 운동권 조직 내에서야 절차를 무시한 정치행위가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그간 용인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비례대표 선출과 같이 정치행위의 범위가 광역화되어 다수의, 그리고 다양한 조직 외부의 사람들이 관련될 경우, 그러한 시도가 더는 용인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대한 범죄행위가 된다. 어떤 결정이 미치는 효력범위가 소수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결사체의 경우, 조직적 세를 형성한 일부 사람들이 선거행위 이전에, 곧 사전에 어떤 정치적 결과를 알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 다반사다. 나아가 그러한 시도는 결사체 밖의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간혹 성공에 이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와 같이 정치범위가 광역화될 경우, 결과가 사전에 알려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오직 불확실성만이 사태를 지배한다. 현대 민주주의가 그나마 오늘의 수준에 도달한 결정적 원인 역시 바로 정치적 범위를 광역화하여 정치적 결과의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데 크게 힘입은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처럼 불확실성을 제도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선거행위에 발생한 정치 결과가 사후적으로 외부적 힘에 의해 변경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게 핵심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사태란 그러므로 선거와 무관한 외적 힘이 개입하여 정치적 결과를 뒤집으려는 부정선거 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 역시 이에 해당한다. 국회의원 선거가 헌법상 국민을 대표하는 주권기관 담당자를 선출하는 정치행위에 해당하므로 이번 부정선거 사건은 사태의 속성상 정당해산에 이를 만한 중대한 정치적 범죄행위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스스로 해산하느냐, 아니면 선거관리위원회 등 해당 국가기관에 의해 타율적으로 해산하느냐의 선택만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사건의 후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2월 대선에서 이른바 ‘민주세력’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은 그만큼 더욱 멀어졌으며, 가뜩이나 힘든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 역시 갈 길이 더욱 험난해졌다. 이게 더 힘들고 화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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