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담박한 그의 처신이 돋보이는 건
요즘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득권 수호’의 난장과 대비돼서다
요즘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득권 수호’의 난장과 대비돼서다
사설학원 강사로 명성을 얻은 어느 후배와 얼마 전 안부 전화를 주고받을 때였다. 그래 요즘 대학생들은 가르칠 만하냐, 재미도 있지만 힘들어요, 내일이 토요일인데 걔네 엠티(MT)에 얼굴이라도 비쳐야 해요, 네 나이가 몇인데, 이런 등속의 대화를 나누다 문득 후배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나, 슬슬 마음의 준비 하고 있어, 형. 박수칠 때 떠나려고.”
그 후배에겐 다소 미안한 얘기지만, 이 말은 허언으로 끝날 공산이 다분하다. 막상 그만두려고 들면 따지고 헤아려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산봉우리에서야 하산이 불가피하지만, 인간사의 갖가지 ‘정상’에서 제 발로 걸어 내려오기란 절대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페프 과르디올라의 선택이 한결 대단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세계 최정상의 프로축구 클럽 중 하나인 FC바르셀로나의 이 젊은 감독은 지난 4월 말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그의 ‘퇴장’은 우리 언론에서 단신으로 취급되고 말았지만,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선 대단한 반향을 불렀다.
원래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다는 축구감독 하나 물러나는데 웬 호들갑이냐는 타박도 있을 법하나,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이룬 업적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감독 부임 첫해인 08-09시즌 스페인 클럽 역사상 첫 트레블(3개 타이틀 획득)에다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까지 전인미답의 6관왕을 달성한 그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두 차례, 스페인 라 리가 3연패 등 모두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클럽에 안겼다. 부임할 당시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있던 팀을 단숨에 바꿔놓은 것이다.
4년 통산 승률 73%의 최강 클럽을 일궈낸 감독이 돌연 ‘하산’할 기색을 보이자 가장 놀란 건 구단이었다. 과르디올라에게 내심 ‘바르셀로나의 퍼거슨’(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앨릭스 퍼거슨 감독)이 돼주기를 기대했을 구단은 “다음 시즌에도 그가 우리 팀 감독이기를 바란다”며 연임 카드와 백지수표를 서둘러 제시했다. 비록 이번 11-12시즌 성적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코파 델 레이(스페인국왕컵) 결승 진출 이외에 타이틀 도전 기회는 모두 놓쳤다-고 하지만, 라 리가에서 막판까지 선두를 놓고 다퉜던 터라 12-13시즌을 기약하고 대비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의 대답은 ‘노’였다. 이전에도 ‘긴장감을 놓지 않기 위해’ 감독직을 1년 단위로 재계약해오던 그는 결국 팀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사임의) 이유는 간단하다. 내 안이 텅 비어 버린 느낌이다. 다시 채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내 시대는 끝났다. 4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이기형 시인의 <낙화>를 떠올리게 하는 과르디올라의 선택은, 2012년 5월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득권 수호’의 난장과 대비돼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진보를 자처하는 어느 정당의 다수 정파는 명백히 드러난 선거부정 앞에서도 상식에 반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 그 정당과 손을 잡았던 이웃 정당에선 4월 총선 패인 분석 같은 일은 뒷전으로 미룬 채 대주주 격인 당내 두 집단이 당권 과점부터 도모하다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한 공영방송사의 사장은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전사적인 파업에도 꿋꿋이 100일 넘게 버티며 자리보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가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어느 작품에선가 이런 구절을 남겼다. “세상 전체가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남녀는 배우일 뿐/ 다들 등장과 퇴장이 있고….” 담박한 처신으로 멋진 뒷모습을 보여준 과르디올라는 1971년생, 우리 나이로 세면 올해 마흔둘이다.
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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