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민교협 의장
부패·반민주 보수정당 싫어
유권자들 진보정당 밀어준 것
민주·도덕 잃으면 등돌릴 수밖에
유권자들 진보정당 밀어준 것
민주·도덕 잃으면 등돌릴 수밖에
통합진보당의 위기를 맞아 후배 C가 떠오른다. 그는 민중 해방을 위한 밀알이 되겠다며 부귀영화의 길을 버리고 학생 신분을 속인 채 공장으로 갔고 2년여의 옥살이도 하였다. 그곳에서 명문대 여대생 자리를 버리고 조직 활동을 하던 이와 사귀었다. 외동딸인 그 여자의 부친은 극우 인사.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간 날, 긴 기다림 끝에 의외의 연락이 왔다. 그 어른이 그랬단다. “내 관점에서는 자네는 빨갱이다. 하지만 자네가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은, 도덕적으로도 완벽함을 추구한다는 것이겠지. 나는 설사 빨갱이라도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청년을 사위로 받아들이겠다.” 그 말은 어려운 때마다 희망의 빛이었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 중 상당수는 후배 C처럼 고문과 구속과 궁핍을 달갑게 받아들이며 운동을 해온 이들이다. 그들 한명 한명은 한국 진보운동의 역사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민중의 입장에 서자. 버틸수록 민중해방을 외치며 풍찬노숙을 마다지 않은 그 인고의 삶 자체를 헛수고로 돌리는 자기부정에 빠진다. 이 순간에도 민중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왜 수만명의 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고 쌍용자동차 한 곳에서만 22명이 죽었는가. 물론, 모든 책임이 자본과 국가에 있지만, 그를 막을 정도의 권력을 갖지 못한 진보정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국가와 자본, 보수언론, 대형 교회, 학계를 중심으로 한 파워엘리트 카르텔의 억압과 조작, 레드콤플렉스와 분단모순, 지역주의, 미국의 견제와 공작 등 외부적 요인만은 아니다. 지역에 근거를 둔 풀뿌리 운동의 미비, 진보정책의 구체화 전략 및 실천의 미숙, 담론 주도층의 부재, 노동조합 자체의 종업원 이익집단화, 노동자와 현장 중심성의 약화 등도 중요한 요인이며, 이의 근저에 당권파 주류가 있다. 그들은 민중의 삶을 보듬기보다 이념 선전에 주력하고, 정권과 자본의 억압과 조작에 맞서서 저항하기보다 계파의 권력 획득에 진력하고, 노동자와 함께하기보다 조직 관리에 더 몰두하였다. 이들의 독선과 종파주의 때문에 그동안 노동자가 치열하게 저항한 결실이 진보정당의 권력 획득으로 재현되지 못하였다. 신자유주의자를 끌어들이고 노동자를 외면하여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온 것 또한 당권파다.
대중 없는 대중정당은 사상누각이다. 운동의 장과 달리 정당의 장에서는 도덕성과 민주주의 원칙이 정당성의 기반이다. 대중들은 진보 대 보수의 프레임이 아니라, 후배 C의 장인처럼 부패 대 도덕, 반민주 대 민주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보수정당이 부패했고 반민주적이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진보정당을 밀어준 것인데, 진보정당마저 도덕성을 상실하고 비민주적이라면 그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도덕성과 민주주의, 노동자와 현장 중심성, 진보적인 비전과 혁신적인 정책, 열정과 동지애에 입각한 굳건한 연대와 조직 없이 진보가 설 땅이 없다.
위기는 기회다. 하지만 성찰하고 쇄신하는 자에게만 위기는 기회로 반전된다. 많은 비리가 보수 언론에 노출된 지금이야말로 썩은 살을 도려내고 진정한 대중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이제 방법은 하나다. 처절하게 성찰하고 급진적으로 쇄신하자. 선물이든 혁신이든 상대방이 기대하는 이상을 할 때 효과가 있다. 자신의 팔을 자르는 파사(破邪) 없이 현정(顯正)은 불가능하다. 당권파가 야당이 되는 것을 감수할 때, 진보정당이 여당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역설을 왜 직시하지 못하는가. 모든 권력은 총구도, 계파도 아니라 민중으로부터 나온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 민교협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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