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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간절기 / 강재형

등록 2012-05-10 19:11

지난 봄날의 하루가 떠오른다. 옷장을 열어 본 아내가 배시시 웃으며 ‘입을 옷이 없다’고 했던 날이다. 딱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해 멋쩍게 웃는 나와 달리 중학생 딸은 그 뜻 알겠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이 얘기를 들은 갓 스물의 여학생들은 ‘여자는 철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 게 맞다’며 깔깔 웃는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성 공감’의 힘이다. 한마디로 ‘입을 옷이 없다’는 뜻은 ‘입을만한 옷’이 없다는 뜻이니, 곧 ‘(맘에 드는) 새 옷이 없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봄의 문턱을 넘어서나 싶더니 초여름 날씨가 이어진다. 환절기가 짧아진 것이다. 환절기(換節期)는 뜻 그대로 ‘철이 바뀌는 시기’이다. 철이 바뀔 즈음에는 큰 일교차로 면역력이 떨어지기에 건강상품이 인기를 끈다. 옷장 열어보며 한숨 쉬는 여성들을 위한 패션상품도 쏟아져 나온다. ‘환절기 건강’, ‘간절기 패션’처럼 같은 때를 두고 표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면 쓰임의 차이가 또렷해진다. ‘환절기 건강’(약 400만건)-‘간절기 건강’(약 70만건), ‘환절기 패션’(약 100만건)-‘간절기 패션’(약 330만건)이다.(구글 검색) ‘간절기 패션’(약 1880건), ‘환절기 패션’(약 880건)처럼 뉴스 검색 결과도 다르지 않다.(네이버 검색)

1990년대에 등장한 ‘간절기’는 2000년 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오르면서 세력을 얻는다. 뜻풀이는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올 무렵의 그 사이 기간’이니 ‘환절기’와 다르지 않다. ‘간절기’는 일본어 ‘셋키노 아이다’(節氣の間, 절기의 사이)의 ‘간’을 앞에 앉혀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절기(節氣)는 ‘계절 바뀜’과 무관한 것이니 ‘간절기’를 우리말답게 쓴다면 ‘주로 패션업계에서’처럼 쓰임을 명시하고 한자(間節期)도 밝혀야 한다. 수다한 동의어와 유의어는 말글살이를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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