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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탈핵시장’의 매력 / 정연미

등록 2012-05-14 19:16

정연미 숙명여대 환경경제학 강사
정연미 숙명여대 환경경제학 강사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탈핵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비용을 다시 계산하고 있다. 그 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원전의 전체 비용 중 가장 비중이 큰 건설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새 원전 건설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다. 무디스와 에이치에스비시(HSBC)는 원전 신용등급을 낮췄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기준이 강화되면서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독일의 거대 전력업체인 에르베에(RWE)와 에온(E.ON)은 원전 프로젝트의 비용 상승으로 인해 영국 원전사업을 취소한 바 있다. 현재 유럽에서는 핀란드와 프랑스에서 2개의 신규 원전이 추진되고 있는데, 공사기간 지연과 건설비용 상승으로 사업 추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도 지난 30년간 단 한 건의 신규 원전 건설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세계적인 미래 에너지 기술 시장의 흐름과 원전의 역사를 살펴볼 때, 신규 원전 건설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2010년 전세계의 원전 설비용량은 375기가와트(GW)인 반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381기가와트로, 재생에너지가 원자력에너지를 이미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어떤 미래 에너지 기술에 투자할 것인지는 시장과 규제 여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1년 5월 독일 정부가 원전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독일 사회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탈핵을 논의하고 있다. 독일 정부의 탈핵 결정은 독일 경제에 위기가 아니라 원전 탓에 지금까지 왜곡되었던 에너지 산업의 기술과 투자 장벽을 제거하고, 새로운 ‘탈핵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더 빨리 탈핵을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 아래 탈핵시장과 재생에너지 시장의 이니셔티브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일에서 원전 폐로비용은 원전 한 기당 약 2조7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원전 해체에 평균 30년이 걸리고, 세계적으로 433개 원전이 가동중임을 고려할 때, 앞으로 매년 약 39조원에 이르는 신규 탈핵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란 전망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발전원가에도 못 미치는 값싼 전기요금으로 한국 경제의 산업경쟁력을 유지하기보다 신규 탈핵시장에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새 원전 건설에 국고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탈핵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에너지 정책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또 국내 기업들이 신규 탈핵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원전 폐로기술 인력을 양성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막대한 지원 없이는, 원전 건설은 경제성이 없는 죽은 기술이 되었다. 독일 지멘스의 최고경영자는 2011년 9월 “원전 사업의 역사는 끝났다”며 탈핵을 선언했다. 국내 원전산업체들도 사양산업인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원전 폐로 시장에 뛰어들어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탈핵으로 지금까지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않은 원전의 외부비용이 하락할 것임을 고려하면, 탈핵의 긍정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탈핵은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지역경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원전폐로·에너지효율기술·재생에너지·에너지지식산업(비용-편익 분석, 시나리오,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정연미 숙명여대 환경경제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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